우리는 모두 고령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돌봄의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한다. 그렇기에 고령화와 돌봄을 수동적으로 '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맞춤 영양 돌봄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동안 돌봄 등의 제품·서비스는 "만들면 어르신은 당연히 쓴다"는 공급자 중심의 생각이 강했다. 지팡이에 첨단 기술을 더해도, 정작 어떤 어르신은 '지팡이 자체'를 원치 않을 수 있다. "떠먹여 줄 것인가, 스스로 떠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처럼, 돌봄은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법·제도 변화: 통합돌봄의 전국 시행을 앞두고
대부분의 노인은 병이 악화되기 전까지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지내다 자연스러운 마무리를 원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2024년 3월 26일 제정됐고, 2026년 3월부터 전국 시행될 예정이다.
법의 목적은 고령·장애·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지역사회 안에서 의료·요양·일상 돌봄을 연계·통합해 받도록 해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대상은 노쇠·장애·질병·사고 등으로 복합 지원이 필요한 노인·장애인 등이며, 서비스 범위는 재택의료·재택간호·복약·만성질환관리·가정형 호스피스·요양병원·치매안심센터, 장기요양·일상생활 지원·가족지원 등 생활 전반을 포괄한다. 개인이 서비스를 따로따로 신청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연계된 패키지로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시·군·구 중심의 지역 통합 기반이 필요하며, 현재 131개 지자체가 예산지원형·기술지원형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통합 돌봄에서 영양 돌봄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할까? 왜 '영양 돌봄'인가?
한국은 급속 고령화 속에 영양 문제 논의가 의료·주거에 비해 부족하다. 노인 6명 중 1명이 영양섭취 부족을 겪고, 특히 독거·고령 세대 증가로 식사 준비의 어려움으로 인해 저영양 위험이 커지고 있다. 단순 배식이 아니라 질환·기능 상태에 맞춘 맞춤 영양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현장의 많은 서비스는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돼 메뉴 선택권, 저작·삼킴 곤란 등 수요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영양 돌봄은 끼니 해결을 넘어 건강한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 관리다. 한 끼 제공을 넘어 영양평가→식단 설계→섭취 지원→모니터링까지, 지역 기반의 통합돌봄으로 확장돼야 한다. 이는 노인의 신체 기능 유지, 의료비 절감, 사회적 고립 완화로 이어진다.
일본과 독일의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고령자의 저작·연하 기능을 반영한 식품 규격(UDF)을 마련하고,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저작·연하곤란자용' 세부 기준을 도입했다. 재택 고령자 증가에 대응해 '스마일케어' 가이드라인으로 식사·영양·돌봄을 세분화했고, 도시락 배달을 사회적 교류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관리영양사가 커뮤니티 현장에서 영양평가·상담·피드백을 데이터화하고, 지자체·사업자·고령자가 공동 주체로 참여함으로써 표준·인력·데이터가 맞물린 생태계를 구축했다.
독일은 60세 이상(필요 시 60세 미만 포함)에게 유료 식사배달 돌봄을 정교하게 제공한다. 냉동 세트(주 1회)·온식(매일)·치료식·연하식 등 개별화 옵션을 갖추고, 약 2만 개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급식품질 표준'과 '영양관리 전문가 표준' 인증제도를 통해 품질과 전문성을 제도화했다.
두 나라 모두 "영양은 곧 돌봄의 핵심"이라는 인식 아래 표준·인력·데이터를 갖춘 제도화된 생태계를 갖춘 것이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전환 영양돌봄시스템을 구축해야
우리 지자체들도 도시락·밑반찬 배달과 재가요양 식사서비스를 운영하지만, 여전히 메뉴 선택권 제한, 품질·구성 한계, 영양교육을 받은 인력의 부족 문제가 크다. 따라서 한국형 급식 품질 기준과 커뮤니티케어 식생활 관리 기준을 제정해야 한다. 특히 알레르기, 저염·연화식, 질환별 맞춤식 등 세분화된 선택권을 보장하는 표준화된 메뉴 체계와, 이용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주문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ICT·AI를 활용한 시범사업은 일부 진행 중이나, 대부분이 단순 매칭·배송 관리에 그친다. 향후에는 건강 상태, 질병 이력, 생활 환경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영양 처방을 제안하는 서비스로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빅데이터 기반 영양관리 사례 축적과 이를 활용한 표준화·제도화가 병행돼야 한다.
아울러 전문 인력과 역할 재설계가 필요하다. 영양사는 지역 기반에서 영양·건강 스크리닝 도구 개발, 정보 전산화, 급식·돌봄 제공 인력과의 연계 체계 구축을 담당해야 한다. 임상 수준의 전문교육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 돌봄 현장에서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요양보호사·생활지원사에게는 기본 영양교육을 의무화해 식사 수행 및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배달 인력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안부 확인·건강 이상 징후 보고를 수행하는 역할로 재정립돼야 한다.
노인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 해결이 아니다. 하루의 가장 큰 활동이자, 건강 유지와 사회적 교류의 핵심이다. 그렇기에 식사 돌봄은 정서적 지지와 사회적 연대를 함께 담아내야 한다. 또한 의료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것도 식생활이다.
이제는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영양 돌봄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고 존엄한 삶을 이어가게 하고, 동시에 국가적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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