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감정원 "의료와 법 사이 간극 줄여 공정·전문성 강화"
감정위원 인증교육 의무화 추진… 사법 신뢰 회복 위한 제도 개선 속도
임상 경험 넘어선 전문성 요구… 의협 의료감정원, 법원 예규 반영 목표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이 감정위원의 전문성 확보와 공정성 담보를 제도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감정위원 인증교육 이수 의무화'를 대법원 예규에 반영하는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다.
단순한 임상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의료감정의 특수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법원과 의료계 간의 인식 차이를 좁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의료감정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의료감정원은 23일 의협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독립적 운영 현황과 업무 효율화 방안, 향후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우용 원장을 비롯해 한동우 운영위원장, 신동우 심의위원장이 참석했다.
"임상과 감정은 다른 영역… 교육 통한 표준화 절실"
의료감정의 최우선 과제는 감정위원의 자질 향상이다. 현재 대법원 예규는 국·공립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10년 이상 임상 경험을 쌓은 전문의를 감정인으로 위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감정 관련 교육 이수 요건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우용 원장은 "임상에서 훌륭한 의사라고 해서 곧바로 양질의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과서적 판단과 실제 의료현장의 차이, 의학적 표현이 법정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체계적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컨대 감정서에 '아쉽다'는 표현을 쓰면, 법정에서는 이를 '잘못됐다'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며 "감정위원이 동일한 용어와 잣대로 감정을 수행해야 결과의 신뢰성과 일관성이 담보된다"고 강조했다.
의료감정원은 이를 위해 현재 연 2회 시행 중인 '의료감정 인증교육'을 필수 요건으로 제도화하고, 법원행정처와 협의를 거쳐 대법원 예규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개별 의사에게 감정을 의뢰하더라도 인증교육을 이수한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유도, 감정의 질을 상향 평준화한다는 복안이다.
한동우 운영위원장도 "의료감정은 분쟁 재판에서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작용한다"며 "체계적 교육을 통해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감정제도의 출발점"이라고 힘줘 말했다.
"의협 산하지만 99% 독립… 근거 중심 감정"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사 편들기' 우려에 대해서도 감정원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우용 원장은 "감정원은 의협 산하에 있지만, 인선과 감정 과정, 감정 내용에 집행부가 관여하지 않는 99% 독립기구"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단체에서는 '의사 편만 든다'고, 일부 의사 회원들은 '왜 의사 사정을 봐주지 않느냐'고 상반된 비판을 한다"며 "이는 곧 감정원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의학적 근거만으로 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감정서에 '99% 문제 없음, 단 1% 아쉬움'이라고 작성했는데, 재판부가 그 1%를 근거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의학과 사법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로, 법원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이해의 간극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립목적은 의사단체 의료감정기구로서의 위상 정립
대한의사협회가 의료감정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법원·검찰·경찰 등 사법기관은 의료 소송 및 수사 과정에서 직접 의학 전문가를 섭외해 자문을 받아왔으나, 의료분쟁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감정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결과 감정 의사 부족, 회신 지연, 감정 결과의 질적 저하 문제가 불거졌고, 독립적 감정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조계의 지속적인 요청과 의료계 내부 논의를 거쳐 2019년 9월, 마침내 대한의사협회 의료감정원이 공식 설립됐다.
감정원의 설립 목적은 명확하다. 의사단체 의료감정기구로서의 위상 정립, 공정성·전문성·신속성 확보, 증가하는 수요에 맞는 효율적 운영 체계 확립, 전문학회와의 연계 강화, 감정 경쟁력 제고다.
운영 절차도 엄격하다. 법원·검찰·경찰 등이 의료감정원에 사건을 의뢰하면, 심의위원회가 대한의학회 산하 50여 개 학회 중 적합한 학회를 지정한다. 해당 학회는 내부 의사결정을 거쳐 단수 혹은 복수의 감정위원을 선정하고, 이들이 작성한 감정서는 학회 차원의 검토와 리뷰를 거쳐 의료감정원으로 송부된다. 이후 감정원은 심의위원회 결재를 거쳐 의료감정원장 명의로 결과를 회신한다. 추가 질의가 발생하면 다시 학회로 보내 보완 감정을 진행하는데, 이 역시 의료감정원장 명의로 회신한다.
특히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는 판결 결과가 곧바로 진료 기피나 소극적 방어진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복수감정이나 이중검증을 통해 한층 신중히 다뤄진다.
이우용 원장은 "필수의료 분야는 소송 결과가 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감정 과정에서 더욱 엄정함을 기하고 있다"며 "이는 판결이 해당 분야 의료 기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라고 말했다.
"감정료 현실화·심의 인력 확충… 지연 해소 기대"
그간 의료감정 제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 온 것은 '지연'이다. 감정 회신이 늦어지면 재판 당사자의 불만이 커지고, 이는 곧 감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감정원은 올해 1월 1일부터 감정료를 기존 대비 2배 인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동우 위원장은 "낮은 감정료가 위촉 난항과 지연의 주요 원인이었다"며 "감정료 현실화를 통해 보다 책임 있고 신속한 감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심의위원회를 기존 1개에서 2개 조로 확대해 학회 배정을 매주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사무처 인력도 3~4명에서 5명으로 증원해 업무 효율을 높였으며, 장기 미회신 건을 모니터링하면서 학회에 지속적으로 알림을 주는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아울러 법원의 우편 기반 자료 전달 방식을 디지털 파일 전송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신동우 심의위원장은 "고령 환자와 다학제 사건이 늘어 사건이 복잡해지고 있다"며 "디지털화와 검증 절차 강화를 통해 신속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감정위원 구성 다양화와 신뢰도 제고
현재 의료감정은 주로 대학병원 전문의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진료 환경과 동떨어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의료감정원은 개원의 참여 확대를 검토 중이다. 단, 단순한 참여 확대가 아니라 교육 이수와 질적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감정원은 인증교육을 연 2회 정례화하고, 학회별 사례 중심 심화교육을 강화해 감정위원 풀(Pool)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동료심사(Peer Review) 제도를 확대 적용해 감정서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한층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감정원은 나아가 의료분쟁에서 의사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과 배상 책임이 필수의료 기피와 방어적 진료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우용 원장은 "의료행위를 사법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을 통해 의학적 검증을 우선으로 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 비율을 높여야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향후 의료감정원은 ▲감정위원 인증교육 의무화 ▲법원행정처와의 정례 교류 ▲감정료 현실화 ▲온라인 감정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확립할 계획이다.
이우용 원장은 "감정원의 기능과 규모를 지금보다 확대해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실히 제도화하겠다"며 "법원과 의료계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의료감정을 실현해, 환자와 의사 모두의 권익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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