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국내 인공지능(AI) 분야 인재 육성을 위해 KAIST(총장 신성철)에 사재 500억원을 기부한다.
김 명예회장은 16일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 정근모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기부 약정식을 통해 향후 10년간 연차별 계획에 따라 사재 5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날 약정식에는 신성철 KAIST 총장을 비롯한 KAIST 관계자와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 등 김 명예회장의 가족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참석인원을 최소화해 조촐하게 진행하는 한편, 안전관리 담당자가 입장객의 발열 및 소독상태를 점검하고 이동 시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진행됐다.
이번 기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AI 분야 주도권을 잡아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AI 분야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김 명예회장의 소신에 따라 이뤄졌다.
김 명예회장은 이 날 약정식에서 “AI 물결이 대항해시대와 1·2·3차 산업혁명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큰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이 AI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출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이어 “위대한 잠재력을 가진 우리 국민이 국력을 모아 경쟁에 나서면 AI 선진국이 될 수 있다”며 “과학영재들과 우수한 교수진들이 집결해있는 KAIST가 선두주자로서 우리나라 AI 개발 속도를 촉진하는 플래그십(flagship)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AI 혁명으로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여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AI 시대를 주도한다면 세계사에 빛날 일이 될 것”이라며 “KAIST가 AI 인재 양성으로 AI선진국의 길을 개척해 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 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김 명예회장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며 “KAIST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사명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김 명예회장의 기부를 토대로 KAIST가 AI 인재 양성 및 연구의 세계적 허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는 ‘AI 강국 대한민국’을 염원해 온 김재철 명예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AI대학원의 명칭을 ‘김재철 AI대학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총 40명의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을 꾸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의 AI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융복합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 육성을 위해 AI 분야 기술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 강의를 통해 지식과 인성을 두루 갖출 수 있는 전인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KAIST는 우수 인재와 교수진 확보를 위해 현재 대전 본원에 있는 AI대학원을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서울 캠퍼스(홍릉)로 이전하고, 2023년부터는 AI 관련 기업들과의 공동연구 및 산학협력 프로젝트 등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양재 R&D(연구개발) 혁신지구’에 교육 및 연구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KAIST AI대학원은 국내 대학 중 가장 먼저 지난 2019년 3월 과기정통부의 ‘2019년도 AI대학원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같은 해 8월 문을 열었다. 현재 KAIST AI대학원은 구글, 아이비엠 왓슨,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의 AI 연구소 출신 전임교수 13명과 겸임교수 8명 등으로 구성된 교수진으로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퇴임 이후 AI 인재 양성과 기술 확보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산업은 지난해 한양대에 30억원을 기부해 국내 최초의 AI솔루션센터인 ‘한양 AI솔루션센터’를 설립했다. 동원그룹은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TF를 구성해 전 계열사에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프로젝트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달 대표이사 직속의 AI전담조직도 신설했다. 지난 8월에는 KT가 주도하고 있는 AI 기술 산학연 협의체 AI원팀(AI One Team)에도 합류했다.
남다른 학구열과 교육철학, 손꼽히는 문장가
김재철 명예회장은 원양어선 말단 선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동원그룹을 일군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가 오늘의 동원그룹을 일궈내기까지는 학구열이 한 몫을 했다. 기업경영자로서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항상 새 것을 탐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은 어느 기업인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다.
1958년 부산수산대학을 졸업한 김 명예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바쁜 과정에서도 1969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과 1978년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쳤다. 또한 1981년에 미국 하버드대학 AMP과정을 밟으면서 미국 경영방식인 매니지먼트시스템을 익혔으며, 일본 기업의 경영전략을 연구했다.
이같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7년 부산수산대학에서 명예 수산학박사를 수여 받았다. 또한 2001년 고려대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를 수여 받았다. 그리고 2008년 조선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를 수여 받은 데 이어 2017년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명예 이학박사를, 2019년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명예 교육학박사를 각각 수여 받았다.
김 명예회장의 남다른 학구열은 자원이 없는 나라의 미래는 교육과 인재 육성에 있다는 소신에서 시작됐다. 김 명예회장은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부터 고향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했고, 동원산업 창립 10주년인 1979년 사재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인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3억원의 사재 출연으로 출발한 동원육영재단은 장학사업, 연구비지원, 교육발전기금지원 등 40년 간 수백억 원의 장학금으로 한국 인재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동원육영재단은 미래의 주역인 학생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1979년부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으며, 현재까지 약 800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김 명예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원육영재단은 또 덕(德)·지(智)·체(體)가 조화로운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학생 대상 전인교육(全人敎育) 프로그램인 ‘자양 라이프 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했으며, 취지에 공감한 국내 유수의 대학들도 ‘라이프 아카데미’ 과정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서울교육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국외대, 숙명여대, 인하대, 부경대, 조선대, 청주대, 영남대 등 12곳이다.
동원육영재단의 ‘동원 책꾸러기’ 캠페인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매개로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올바른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독서 장려 프로그램으로, 2007년부터 만 6세까지의 자녀를 둔 가정을 대상으로 매월 그림책을 무료로 보내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무료로 보내준 그림책이 약 140만 권이 넘는다.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 경영 외에도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해양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수산회 회장과 원양어업협회 회장 등을 맡았으며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며 한국의 대외무역 발전에 힘썼다. 또한 2007년 여수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맡아 국내외를 오가며 분주한 유치활동을 벌였으며, 마침내 여수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유치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1년 금탄산업훈장을 수훈한 데 이어 여수엑스포 유치 공로를 인정 받아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김 명예회장은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경영방침으로 기업인의 성실과 책임을 강조해왔다. 그의 이러한 원칙은 1991년 당시 사상 최고액이었던 62억원의 증여세 자진 납부 사례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포함해 한 해도 쉬지 않고 매년 공개 채용을 지속해왔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한 우리나라와 해외 각국의 경제 및 민간 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경제협력과 친선 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벨기에, 칠레, 페루, 뉴질랜드, 세네갈 등 해외 6개국에서 공로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기업인 중 손꼽히는 문장가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해상 생활 중 가끔 있는 여유시간을 활용해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일기와 글을 써 신문, 잡지에 기고했다. 김 명예회장이 쓴 글은 초·중·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한국무역협회장 시절인 2000년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를 저술하기도 했다. 장기간 바다에서 배를 타며 우주와 지구에 관한 여러 생각을 하며 지구의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 삼아 태평양으로 뻗어 있는 가능성의 땅이라는 깨달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로 등극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김 명예회장의 집무실 한쪽 벽면에는 위아래가 뒤바뀐 ‘거꾸로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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