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 부처 합동으로 개최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관련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국이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 2월 28일 WTO 일반이사회에서 현재의 개도국 지위 결정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지난 7월 26일 미 무역대표부(USTR)에게 "경제 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향후 90일 안에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10월 23일까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정일정 국제협력국장은 1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농식품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한 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관계부처와 협조해 미국 측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고, 경제부처와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대책 마련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개도국 지위 유지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안팎에서는 사실상 부처 간의 최종 조율만 남은 상태로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이 임박했다는 예측도 나온다.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국내 농업계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개도국 우대조항인 관세감축과 국내보조금에서 개도국 우대 적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관세감축뿐 아니라 농업 보조금 총액도 현재 1조4900억원에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농업 보조금 총액의 대부분은 쌀 직불금으로 쓰이고 있어 농업계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다만 당장에 농업계에 큰 피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일정 국장은 “WTO 다자간 협상체계 안에서 확립된 개도국 감축방식을 적용한 현재의 관세와 보조금 수준은 차기 WTO 협상 시까지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행 관세나 보조금에는 영향이 없고, 차기 WTO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WTO 협상이 다시 시작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01년 DDA(Doha Development Agenda) 협상이 시작돼 현재까지 진행 중이지만, 2008년 4차 수정안 채택이 불발되면서 사실상 농업협상의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정일정 국장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커서 현재로서는 차기 WTO 농업협상의 개시 여부와 시기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면서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자국법에 따라 일방적인 보복 조치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통상전문가에 따르면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중국과의 무역분쟁에서 비롯됐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가 자칫 한국 농업계에도 불통을 튈 수 있어 농식품부가 신중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쌀을 중심으로 민감품목들을 당장 보호해야 하고, 포기하지 않을 경우 미국 측 보복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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