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임재현 원장의 <영화속 의학이야기>

날 것으로 먹는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습니다. 예를들어 생선회를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 없이 먹는다면, 아마도 두세점 이상 계속 먹기 어려울 겁니다. 육회도 마찬가지,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는 씹어 삼키기도 어렵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날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맛 집 투어에 빠지지 않는 곳이 횟집입니다. 유명한 식당의 맛있는 생선회나 육회를 장 맛 때문에 열광하면서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날 음식의 매력은 씹는맛, 재료의 식감에 있습니다. 탱글 탱글하고 쫄깃 거리는 씹는 맛은 장 맛과 어우러지면서 멋진 음식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바삭거리는(crispy) 식감을 좋아하는 서구 문화권에서는 생선회나 육회를 좋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 아무리 멋진 자연 풍광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10분이상 보고나면 지루합니다. 단지 아름다움만으로는 쉽게 식상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생명력이 불어 넣어지면 달라집니다. 영화는 감칠 맛나는 명품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최근 개봉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화면이 압권입니다. 하지만 두시간 반이 넘는 긴 러닝 타임을 아름다운 화면과 빈약한 스토리만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까요?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끌고가는 힘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거친 숨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 복수심에 불타는 생명력이 영화의 에너지입니다.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돈을 찾아 몰려드는 백인들의 살육전으로 피로 물들었던 시기입니다.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다카프리오)는 뛰어난 사냥꾼이지만 아메리카 인디언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둔, 어쩌면 백인들에게는 아웃 사이더같은 존재입니다. 돈이 되는 모피를 구하기 위한 사냥 팀에서, 북미 대륙의 지리를 잘아는 휴 글래스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동료 사냥꾼인 존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인디언 아들을 둔 휴 글래스를 야만이라고 멸시합니다. 사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인디언과 백인, 그 둘 중에 누가 더 야만적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폭력성에 젖은 백인들이 더 야만적일 수도 있습니다. 인디언을 야만으로 몰지만 자기가 더 야만적인 존 피츠제럴드, 사냥 팀의 리더인 헨리 대위(돔놀 글리슨)가 휴 글래스를 더 신뢰하는 것에 때문에 불만도 더해집니다.

어느 날 휴 글래스가 곰의 습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인디언들의 추격에 쫏기는 사냥팀에게 부상당한 휴는 큰 짐이 되는데, 함께 뒤처진 존 피츠제랄드는 배신을 하게 됩니다. 휴 글래스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을 죽이고, 휴를 죽게 내버려둔채 떠나 버린 겁니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휴 글래스는 복수의 일념으로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입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아름다운 겨울의 북미 대륙과,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육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립하며 관객들을 끌고 갑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의 치명적임에서 절정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입니다.

휴 글래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생존을 위한 사투는 많은 의학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속 의학 이야기를 다루다 보면 영화속 옥의 티가 먼저 보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영화를 영화로 보면 될텐데 뭘 그렇게 따지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의학적 개연성 여부로 영화의 몰입이 방해가 되는, 의사라는 직업이 이럴 때는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먼저 곰의 습격으로 부러진 다리가 그렇게 빨리 회복될 수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강이 뼈가 부러지면 3-4 개월 정도의 치유기간이 있어야 붙게 됩니다. 영화에서 휴 글래스가 다친 다리로 다시 걸으려면 겨울이 지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영화의 전개에 무리가 있어 며칠 만에 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기적의 회복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수들은 대상을 제압하기 위해 목을 먼저 물어 호흡을 마비 시킵니다. 휴 글래스는 곰의 공격에서 목을 보호하기 위해 엎드리지만 목 부상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곰의 후두부 공격에 의한 기관지 손상을 받은 휴 글래스는 말을 못하게 되는데( 부상으로 기관지 절개와 유사한 상태가 됨- 이 경우 음성을 내기 위한 호흡이 기관지의 구멍으로 새어버려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됨), 나중에 화약으로 기관지의 구멍을 태워 막는 시도를 합니다. 상당히 위험한 시도이지만 목소리를 어느정도 내게 됩니다.

장기간 의식의 회복이 없는 환자는, 호흡을 돕고 가래의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피부를 통해 기관지에 구멍을 내고 관을 삽입합니다. 기관지 절개술이라고 하는 처치이고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면 관을 제거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구멍을 막히게되지요. 영화 속에서 화약으로 목의 구멍을 태우는 시도는 볼거리 제공을 위한 과도한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말의 내장을 꺼내고 그 복강 속에서 저체온증을 예방하는 등, 다양한 의학적 관심을 갖게 하는 볼거리들은 영화보는 내내 즐거운 탐구의 대상이었습니다. 모처럼 지적 유희를 즐길 수있는 영화<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였습니다.

2007년에 나란히 개봉되었던 문명의 충돌을 다룬 로드 무비 <아포칼립토>, <패스파인더>와 흡사한 분위기의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혼신을 다한 연기, 그리고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숨막힐듯 한 영상은 영화<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를 명화의 반열에 올려 놓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다카프리오의 오스카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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