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어 베러 월드) 의사는 환자를 골라 치료할 수 있나?

임재현 원장의 <영화속 의학이야기>

폭력은 영화감독들의 가장 매력적인 소재일 것입니다. 폭력에 대한 미학적 묘사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알아요, 폭력이 가득한 영화를 만들면 싫어할 사람이 많다는 걸. 그것은 그들이 오를 수 없는 산이기 때문이에요.”

그는 폭력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며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세밀한 해부를 통해 폭력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폭력을 알아야 폭력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에 폭력은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갑을 논쟁도 폭력의 하나이고 직장, 사회, 가정 어느 곳에서도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은 폭력을 영화의 소재로 즐겨 사용했고 사회적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폭력으로 이목은 돌려놓았으나, 그 해답은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가진 문제가 많다고 고발하고, 그 해결은 당신의 몫으로 남겨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영화가 끝나고는, 무거운 마음으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곤 했습니다.

과연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하게 고찰한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입니다. 덴마크 감독 수잔 비에르의 특색 있는 편집도 돋보이고, 폭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수작입니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 영화의 제목처럼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우리 모두의 희망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에는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지나갑니다. 하나는 폭력에 대한 적극적 대처, 즉 눈에는 눈, 피에는 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박애주의입니다. 즉 순환되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폭력에 대한 우리의 자세, <인 어 베러 월드>를 위한 것은 그 둘 중에 어떤 것일 까요?

영화 <인 어 베러 월드> 에는 두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크리스티안은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가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와 살게 됩니다. 그가 전학 온 학교에서 엘리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엘리아스는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고 있었는데, 크리스티안이 도와주면서 친해지게 됩니다.

엘리아스에게는 반대로 좋아하는 아버지가 있지만 같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은 의사인데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번의 외도로 부인과 별거하게 되었지만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엘리아스를 괴롭히던 아이를 두들겨 팬 크리스티안, 학교에 불려온 아버지와 설전을 벌입니다. 아버지가 타이릅니다. “네가 때리면 그 애가 또 때리고, 그럼 싸움은 끝도 없어. 모르겠니? 그러다 전쟁이 나는 거야.”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꼿꼿하게 말합니다. “그러니 초장부터 본때를 보여줘야죠.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 학교든 다 그래요. 이제 누구도 나 못 건드려요.”

이번에는 크리스티안과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과의 설전입니다. 크리스티안의 동생이 싸우는 것을 말리던 안톤은 상대 아이의 거친 아버지에게 당하기만 합니다. 뺨을 맞기도 합니다. 폭력적인 상대방에게 당하기만 하는 안톤을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은 말합니다.

“봤지? 그 사람이 졌어.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거야.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는 거야.” 크리스티안이 반박합니다. “자기가 졌다고 생각 안 할 걸요.” 하지만 안톤도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그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입니다.

안톤은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박애주의자이기도 한데, 큰 갈등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배가 갈라져 실려 오는 임산부를 자주 치료하게 되었는데 어렵게 살려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아보니 끔찍했습니다. 태아의 성별을 놓고 반군의 대장이 부하들과 내기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배를 갈라 확인을 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반군의 대장이 다리를 다쳐 실려 오게 됩니다. 치료를 반대하는 주위의 사람들의 반대, 그리고 안톤의 인간적인 분노는 그 반군을 쫒아 내야 하지만, 의사로써의 직업윤리는 그를 치료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안톤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의사는 모든 고통 받는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선서를 합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전쟁 중에 자기를 죽이려 했던 적군을 치료해야 할 수도 있고, 악마 같은 악질범을 치료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갈등과 의사로써의 직업 윤리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의사들의 선택은 고민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의사가 환자를 골라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아픈 사람을 차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고려는 할 수 있습니다. 치료의 우선순위를 둘 수는 있는 것입니다. 응급실에 강도와 피해자가 같이 실려 왔을 때 치료의 우선순위, 장군과 이등병이 동시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치료의 우선순위,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의학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의사의 냉철한 사회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의대생들에게 윤리적, 사회적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강하게 대처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와 화해로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영화의 물음은 폭력에 대한 의사의 대처에 대한 물음까지 이어지면서 결말로 이어집니다. 영화 속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폭력이 폭력을 낳고 대립과 반목으로 가득 찬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 <인 어 베러 월드>를 위한 이상과 현실사이에서의 우리의 갈등, 그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요?


김아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