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오르면 병원부터 끊어"…노인외래정액제 '본인부담 절벽'

의협 조사 결과 65세 이상 68.8% "진료비 부담"…61.3% "동네의원 이용 줄어들 것"
정액구간 벗어나면 부담 급증…의협 "25년 묶인 기준선, 고령층 의료 접근성 막아"

김아름 기자 2026.09.30 18:52:35

(왼쪽부터)좌훈정 의협 부회장, 최운창 특별위원장, 김문수 특별위원회 부간사

진료비가 조금만 올라가도 동네의원 이용을 줄이겠다는 고령층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외래정액제의 정액 기준을 벗어나는 순간 본인부담금이 크게 뛰는 이른바 '본인부담 절벽'이 고령층의 의료 이용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의료계는 제도 시행 이후 장기간 고정된 정액 기준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구조 개편을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 노인외래정액제 및 의료급여 관련 특별위원회는 30일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외래정액제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와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의협이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에서 진료비 인상에 따른 노인 본인부담금 증가가 부담스럽다는 응답은 전체의 53.5%였다. 실제 제도 적용 대상인 65세 이상에서는 68.8%로 높아졌다. 문제는 비용 부담이 의료 이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본인부담금이 증가할 경우 동네의원 이용 횟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은 전체 57.9%, 65세 이상에서는 61.3%였다. 동네의원 이용 감소가 노인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도 전체 59.0%, 65세 이상 66.7%로 나타났다.

김택우 회장

정액구간 넘어서는 순간 부담 급증

현행 노인외래정액제는 65세 이상 환자의 의원급 외래진료비에 대해 일정 구간까지 정액 본인부담을 적용하는 제도다.

의협에 따르면 1만5000원 이하에서는 1500원의 정액 본인부담이 적용되고, 1만5001~2만원 구간과 2만1~2만5000원 구간에서는 부담액이 달라진다. 문제는 진료비가 정액구간을 넘어설 경우 환자가 체감하는 부담이 급격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현행 제도는 65세 이상에서 1만5000원, 1만5001~2만원, 2만1~2만5000원으로 구간이 나뉘어 있다"며 "지난 25년간 1구간은 44% 감소한 반면 2구간은 57%, 3구간은 77%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서비스 가격과 진료비가 변화하는 동안 정액 기준이 장기간 고정되면서 고령 환자가 정액구간을 벗어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최운창 특별위원장

최운창 특별위원장은 "2001년 1만5000원으로 설정된 정액 기준이 25년 동안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재의 진료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동안 의료비와 진료 형태가 변했지만 정액 기준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당수 노인 환자가 정액구간을 벗어나 20% 이상의 본인부담을 하게 되면서 진료비가 조금만 증가해도 환자가 느끼는 부담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고령층은 만성질환 등으로 지속적인 외래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한 번의 부담 증가가 의료 이용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또 "현장에서는 진료비 증가에 따른 환자 민원과 의료기관과의 마찰도 발생하고 있다"며 "단순히 본인부담금을 낮추는 접근보다는 정액구간을 넘어서는 순간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구조 자체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당시와 현재의 의료환경은 크게 달라진 만큼 고령층의 의료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장 사례도 제시됐다. 김문수 특별위원회 부간사는 토요일이나 공휴일 진료, 창상 치료와 주사, 물리치료 등이 추가되면서 진료비가 정액구간을 넘어설 경우 본인부담금 차이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용 차이를 부담스러워한 일부 고령 환자들이 주말 진료를 미루거나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있다"며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악화돼 다시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좌훈정 의협 부회장도 "현재 1만5000원 정액 기준은 의원급 진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경증·만성질환을 동네의원에서 관리하지 못하고 질환이 악화돼 더 큰 의료비가 발생한다면 제도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간·휴일 진료 부담도 개선 요구

야간과 휴일 진료에 대한 부담도 조사에서 주요 문제로 나타났다.

주말·공휴일·야간 진료 때 발생하는 추가 본인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체 58.0%였으며, 65세 이상에서는 71.3%까지 높아졌다.

노인외래정액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도 전체 61.9%, 65세 이상 64.9%로 집계됐다. 급격한 본인부담 변동을 줄이는 방향의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전체 48.5%, 65세 이상 56.7%였다.

특위는 단순히 정액 기준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방식보다는 진료비 증가에 따라 본인부담이 급격하게 뛰는 구간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만5000~2만6000원 수준에서 본인부담률을 10~15%로 조정하거나, 약 13%의 정률제를 적용해 본인부담금을 3000~5000원 수준으로 관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한편, 의협은 이번 조사 결과와 더불어 지난 8월 13일부터 진행한 대국민 서명운동 결과를 바탕으로 대정부·대국회 총력전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한 달간 의원급 환자 및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서명에는 총 4만9196명이 참여했다.

최운창 위원장은 "설문조사와 5만여명의 서명 결과를 토대로 종합보고서를 마련할 것"이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지역 의사회의 릴레이 면담을 추진하고 보건복지부와 실무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고령층이 비용 부담 때문에 필요한 진료를 미루지 않도록 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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