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었다

  • 고유번호 : 1211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1:22:42

<150>  짬뽕카바레 (下)


겁이 났다. 뻑하면 불루스 치자고 밖으로 끌어냈다. 나를 보고 맛이간 것인지 아니면 노래가 좋아서 인지, 돈이 많아 보여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죽자살자 나하고만 춤을 추겠다는 것이 아닌가. 심심찮게 발을 밟는데도  뭐에 홀렸는지 그저 좋다는 표정만 짓고 있으니 환장 할 노릇 이었다.
선수가 보면 한심하겠지만(보통 하수들끼리는 박자 감각이 없으니 뒤구마구 추면되는데 하수와 고수는 삼위일체가 잘 안되는 것이 사교춤으로 사료됨, 따라서 발을 많이 밟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고수들의 전언) 그래도 남자 자존심이 있는데 하여간 있는 폼, 없는 똥폼 다잡아가며 분위기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궁뎅이도 돌려보고 손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순서도 없는 황무지 스텝으로 일단 위기를 모면하기에 이르렀다. 순간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강남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였다. 선배께 정중하게 사과하고 친구를 불러 합석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여간 코 큰놈 냄새 하나는 잘 맞는다고 얼씨구나 좋다면서 전화를 끊은 후 정확히 22분만에 룸에 도착했다.


순간 여자들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전빵(얼굴)하나는 왕자처럼 생겼으니 영화배우로 착각했는지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 듯한 눈치였다.
서로 인사하고 나더니 그래도 사업한다고 난데없이 “오늘 이 술은 저가 살테니 코가 삐뚤어지도록 한번 마시고 놀아봅시다”라며 자켓을 벗었다. 여성들의 환호가 또 한번 물결쳤다. 역시 여자들은 돈에 약했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선배가 당연히 쏠 것을 괜히 객기 부리는 것 아닌가 싶어 옆에 다가가서는 허벅지를 쿡 찔렀다.참! 의미전달이 잘못되면 전혀  뜻밖의 결과가 온다고, 이  친구 허벅지를 찌르니 파트너를 고르라는 줄 알고 숨도 안 쉬고 내 파트너를 지목했다. 찰거머리처럼 앵기는(달라붙는) 그녀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여자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금새 180°뒤틀려 친구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양주 몇 병이 비워질 무렵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만 해도 내 파트너였던 그녀가 마치 친구보고 책임이라도 지라고 하려는 듯 의미심장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슬슬 허물어질 때쯤 친구가 일어나더니 집에 바래다 드리고 오겠다며 그녀를 부축하듯 어깨동무해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착각했다. 나갈 때 눈빛이나, 참석한지 얼마 안됐으나 당연히 돌아 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폰 전화를 하니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시간, 시계바늘은 새벽 2시를 막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관계상 기다리는 것은 포기하고 자리를 파했다.
그 친구가 애당초 오지 않으려 했음을 이때서야 알았다. 요놈이 계산을 하고 간 것이었다. 작업이 들어간 것이다. 집에까지 바래다주려 간 것이 아니고 거시기로 간 것이 분명했다. 왜 척하면 삼척이니까.


이날 내  심장 한쪽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원님 덕에 나팔 불어 볼려다 죽쒀서 개준 격이 됐다고 말이다. 하여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리스트
답글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 300자 이내 / 현재: 0 자 ] ※ 사이트 관리 규정에 어긋나는 의견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현재 총 ( 0 ) 건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