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포마살롱 가곡의 밤

  • 고유번호 : 1203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1:20:04

<146>  쪽사발 선생(上)


역시 사람은 생긴대로 논다는 것이 증명됐다. 노래방에서 한껏 흥을 돋워 놓으면 갑자기 튀어나와 가곡을 부르는 선생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쪽사발 쨍’(그릇과 분위기를 동시에 깬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던가.
장소 불문, 시간 불문, 분위기 불문인 쪽사발 선생(실제 직업, 모 벤처기업 전무), 취기가 올라 노래에 도취되면 가곡 10곡정도는 무리없이 불러댄다. 감정 땡기고, 뱃살 밀어내고, 목젓 떨때면 가끔 존경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쪽사발 선생이 하루는 음대 교수님 대접을 받으며 야외 음악회를 열었다.


이름하야 ‘포마살롱(포장마차) 가곡의 밤‘이라고 할까. 노래방에서 천대받던 쪽사발 선생 이름도 성도 모르는 뭇 사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으니 가만 있을리 만무. 그 답례로 지존 답게 한칼 뽑았겠다. 왜? 기분이 장땡이다 보니까. 몇일전 밤  11경, 종로통 한쪽 골목에 늘어선 포장마차, 어디선가 한잔씩 거나하게 땡긴 주당들이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지 한잔더 걸칠 생각에 삼삼오오 몰려 들었다.


이 시간 우리 일행도 횟집에서 이슬 두서너병에 참치 한마리를 간단하게 해치우고 집에 갈 생각에 나왔는데 어디선가 클라리넷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버릇 개 못준다고 갑자기 쪽사발 선생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옆사람 소매를 잡아 끌고는 포장마차로 향했다. 이른바 거리의 악사들이 단돈 팁 몇푼에 연주를 해주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주로 업소를 돌아다니던 악사들이 국지적 IMF를 맞았는지 포장마차까지  진입한 것이었다.
자리에 앉은 쪽사발 선생 소주 한병에 닭똥집 하나 시키더니 악사를 부르고는 거금 1만원(보통 2~3,000원 정도 수준)을 건네며 자기가 하는 노래에 반주를 맞춰 보라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주변에서 누구라도 시끄럽다며 한방 날리면 따가운 시선에 앉아 있기가 민망할 것이 아니겠는가.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쪽사발 선생 넉살 좋게 한마디 하는데 “손님 여러분 저는 베트남에서 음대 교수를 하고 있는 000인데 노래 한곡 선사해도 되겠습니까”라고 하더니 마치 성악가들이 부르는 포즈를 취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외모로 봐서는 영락 없는 성악가다. 약간의 대머리에 길게 내려온 구렛나루, 36인치를 능가하는 허리와 공격형 배, 90Kg의 몸통,  목소리만 제대로 나온다면 완전히 교수님이 되는 것이다.


반주가 시작됐고 쪽사발 선생의 입이 열렸다. 이게 왠일인가  약 세소절쯤 넘어가는데 이곳 저곳에서 박수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내가 보기에는(술을 먹지 않은 신선한 상태였음) 아닌 것 같은데 포장마차에 들린 주당들이 선도가 떨어져  그런지 잘한다며 치켜세웠다. 한곡이 끝나면 앵콜, 또 끝나면 앵콜 하는데 어디선가 이런  장면을 보았는지 아코디언, 기타, 섹스폰 등을 다루는 몇몇의 악사들이 몰려 들었다. 순식간에 포마살롱 연주회가 돼버린 것이다.


쪽사발 선생 기분 찢어지는지 악사들 두당 1만원씩 돌리고는 결국 10곡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였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땟놈이 번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음호에 계속>



리스트
답글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 300자 이내 / 현재: 0 자 ] ※ 사이트 관리 규정에 어긋나는 의견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현재 총 ( 0 ) 건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