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으켜 세우는데 3시간 걸렸어요

  • 고유번호 : 1229
  • 작성자 : 손상대 기자
  • 작성일 : 2007-02-27 21:31:35

“어이! 저쪽은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우리는 뭐하는 거니.”
파트너는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후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작심을 하려는 듯 회심의 미소까지 지으면서 양주 한잔을 집어들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후배놈이 바람을 불어넣었다.
“자! 한잔 쭈∼욱 하면서 우리도 장단 맞춰 보자구.”
“오빠 만약 내가 취하면 나 책임 져야돼 응.”
“물론 이 오빠가 책임지지 걱정 말고 마시라구.”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왔다갔다하는 대화에 와이담도 심심찮게 실려 다녔다. 한번 키스세례를 받았던 후배녀석은 연신 좋아라 히죽히죽 거리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이나 한듯 노래까지 흥얼흥얼 거리는 것이 아닌가.
역시 술의 마력은 대단했다. 맑은 정신에 들으면 오해를 살만한 말들도 유연하게 넘어갔다. 오히려 그런 말들을 더 기다리는 듯 한술 더 뜨기까지 했다.
나이 먹는 것이 가장 서럽다던 대선배의 안절부절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까운 반면 기쁨조의 역할까지 뒤바꼈으니 창자가 뒤틀릴 수 밖에. 그렇다고 일어서자니 그것도 우습고, 앉아 있자니 가시방석이 아니던가.
이즈음 키스세례를 퍼부었던 여자의 목소리가 둘둘 말리기 시작했다. 술의 취기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그녀의 얼굴은 후배녀석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다된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는 법. 딱 중간인 내가 일어나면서 “선배님 잠시 저 좀 봅시다”며 밖으로 불러냈다.


밖이 춥다는 이유로 외투를 걸치고 나온 둘은 후배들에게 하늘이 준 기회를 망칠 수 없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전화를 걸었다. “선배께서 너희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니 빨리 단편영화 한편을 만들고 오라”며 장소를 일러주었다.
이때가 새벽 1시30분  경, 더 늦으면 죽도 밥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후배녀석이 “황공무지로소이다”는 화답을 보내왔다.


우리는 적어도 단편영화 한편 촬영을 하더라도 2시30분이면 승리의 깃발을 달고 올 것으로 믿고 입가심으로 맥주 너댓병을 죽이고 있었다.
어머나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3시가 다 돼가도 소식도 없었다. 촬영이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 자리를 철수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걸어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 순간 어디서 많이 듯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심할 노릇이었다.


막내 후배녀석이 그 여자와 길바닥에 주저앉아 그때까지 실강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녀석도 별수 없었다. 신촌의 밤 풍경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른척하고 택시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끝이 어떻게 됐냐구요. 다음날 물어보니 한 녀석은 성공했다고 큰소리치고, 막내 녀석은 “여자 술취하니 엄청 무겁데요. 55Kg짜리 술취한여자 길에서 일으켜 세우는데만 3시간이 걸렸으니 길에서 꼬박 날샜지요”라며 이실직고를 합디다.
여러분 연말에 혹시 이런 횡재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라도 여자들 술 많이 먹이지 마세요. 길에서 날 샙니다.



리스트
답글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 300자 이내 / 현재: 0 자 ] ※ 사이트 관리 규정에 어긋나는 의견글은 예고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현재 총 ( 0 ) 건의 독자의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