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희 대한기생충학회장
71년부터 매5년마다 감염률 조사·투약
2008년 ICTMM 제주 유치 성과로 꼽아
해방 후 기생충 왕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기생충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20년에 걸친 지루한 싸움은 승리로 끝났고 최전방에서 큰 공을 세운 것은 대한기생충학회와 기생충박멸협회(현 건강관리협회) 덕분이다.
지난 주 한양대 의대 연구실에서 대한기생충학회를 이끌고 있는 안명희 회장(기생충학교실 교수)을 만나 그동안 학회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20년 전 의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중 우연한 계기에 의해 기생충박사가 됐다는 안 회장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곱고 단아한 얼굴로 기생충과 학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1959년 창립된 대한기생충학회는 현재 3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회원수는 작지만 회원 모두가 활발히 학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참여회원은 대학, 연구소, 보건원개업의사 등 다양하며 전공도 의학, 수의학, 생명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다.
기생충학회에서는 창립이후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이를 책자로 묶어 발간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학회지를 낸 것은 1963년이다. 이 때부터 기생충학잡지가 발간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안 회장은 학회지 발간의 성과와 더불어 최근 각 대학이나 연구비 신청에서 SCI논문을 요구해 학회지가 다소 위축되는 경향은 있지만 1989년부터 Index Medicus 등재잡지로 국내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회의 괄목할만한 성과 중 하나로 기생충이 만연했던 과거 우리나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을 들었다. 학회는 기생충박멸협회와 함께 1971년부터 매 5년마다 국가사업으로 전국 기생충 감염률 조사를 실시하고 투약했다.
안 회장은 “최근 기생충학회는 한국건강관리협회와 KOICA와 함께 중국, 라오스등지에서 기생충조사사업 및 투약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국내 기생충 감염률이 크게 감소했다고 기생충 학자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며 앞으로 통일에 대비한 준비와 더 많은 나라에서 우리가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안 회장은 또 “새로 발견된 신종 기생충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해외교류 성과 중 가장 큰 것으로 안 회장은 앞으로 3년 후에 열리게 되는 2008년 제 17차 열대의학 및 말라리아 학회(ICTMM, International Congress of Tropical Medicine and Malaria)의 유치를 꼽았다. 안 회장은 “제주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는 ICTMM을 대한감염학회, 대한 미생물학회 등과 협조해 1,000명이상이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로 치를 계획이다”고 밝혔다.
학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어느 정도일까? 안 회장은 이 대목에서 잠깐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다. 타 학회와 마찬가지로 대한기생충학회도 정부지원이 미흡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 회장은 “과기총(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학술진흥재단, 한국건강관리협회, 대한의학회 등을 통해 학술대회 개최나 학회지 발간에 필요한 일부분을 지원받고 있으며, 3개국이상 외국인이 참석하는 국제학술대회나, 외국인 연자 초청에 보조금을 지원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류절차가 복잡하고 몇 개월 전에 신청해야 하는 등 지원금을 받는데 번거로움이 많다며 앞으로 이런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여러 절차를 줄이고 지원금액도 늘였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 회장은 학회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후진을 양성하는 일 즉, 사람을 키우는 일이지만 요즘에는 기생충학이나 기초의학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며 “전보다 의과대학 수도 41개로 늘고 해마다 배출되는 의사수도 3,500명에 이르는데 기초의학을 하려는 사람은 한해 한 두 명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책임을 느낀다. 아마도 기초의학을 하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고 학문을 하는 스트레스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과학분야의 발전은 기초의학자가 큰 몫을 해야 하는데 아쉽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학회를 책임진 수장으로서 잘한 일과 아쉬운 점에 대해 “2003년 가을학회 이후 2년간 학회장을 맡았는데 학회는 오랜 전통이 있는 학회로 어느 누가 회장을 맡더라도 학회는 잘 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되도록 많은 회원들이 만족하도록 일처리를 하려고 애썼고 일부 불만이 있는 회원들에게는 전화나 메일로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임기 중 한 가장 큰 일을 묻자 안회장은 “2008년 개최할 국제학회 ICTMM을 위한 주체학회인 우리학회와 국제조직위원회와의 계약을 말하고 싶다.”며 “Eduar do Gotuzzo교수(페루), Pierre Ambro ise-Thomas교수(프랑스) 두 분은 우리학회가 앞으로 국제행사를 잘 치르도록 친절하게 도와주었다”고 회상했다.
안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모든 대학이나 국가기관의 연구비신청에 SCI논문이 중요해 회원들이 외국잡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우리학회 학술지의 게재논문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이 위축됐지만 모든 회원들의 노력으로 학회잡지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최치선 기자
새로운 인체 기생충증 출현 대비해야
국내 기생충학 연구방향과 실적
196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기생충학의 연구방향은 (1)기생충의 대사와 생활사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창출과 (2)역학적, 임상적으로 중요한 각 기생충에 대한 진단방법, 치료제, 유행지 조사에 대한 연구였다. 1970년대에는 체계적인 한국인 장내 기생충 실태조사가 5년 간격으로 실시되기 시작했다.
또한 간흡충의 치료제로서의 praziquantel의 효과를 세계 최초로 평가했고 기생충의 숙주집단에서의 분포양상에 대한 기본개념(negative binomial distribution)을 회충의 감염충체수의 분포조사로 검증했다. 1980년대에는 ELISA, 초음파, CT, MRI 등을 이용한 과학적인 기초연구가 강화됐고 고 서병설교수(서울대)가 참굴큰입흡충과 같은 종의 인체감염을 세계최초로 확인했다.
1989년 부터 Index Med icus/ Medline이 국·영문혼용 국내잡지로는 처음으로 기생충학잡지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연구에는 SDS-PAGE, immunoblot, 세포배양법, 각종 효소학,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기법 등이 활발하게 이용됐다. 과거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고유 기생충을 연구함으로써 그 국소성때문에 주목받던 단계에서 지금은 세계적으로 연구대상이 되는 기생충을 연구하고 각 나라의 일류 연구팀과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향후 우리나라가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생충 감염의 변동양상은 (1)외래성, 수입성 질환의 증가, (2)인수공통감염증의 증가, (3)기회감염의 증가, (4)자유생활종의 병원성 획득, (5)신종 발견으로 인한 새로운 인체 기생충증의 출현, (6)관리됐던 기생충증의 재유행 등으로 이에 대한 적절한 준비와 대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