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고혈압 치료 '빨간불'…라베탈롤 도입 막혔다

고혈압학회, 임신부 항고혈압제 공급 공백 지적…"신속한 도입 필요"
국내 치료선택지 제한…국제 1차 권고약 라베탈롤 수년째 공급 중단

김아름 기자 2026.09.15 10:49:02

고령 임신이 빠르게 늘면서 임신성 고혈압과 전자간증(임신중독증)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임신부 고혈압 치료제 공급에는 여전히 공백이 남아 있다.

국제 진료지침에서 주요 1차 치료제로 권고되는 라베탈롤 경구제가 국내에서 장기간 공급되지 않고 있는 데다, 해외 제품을 활용한 재도입 시도마저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 과정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부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경구 항고혈압제 선택지가 제한적인 만큼, 대체 약제가 부족한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속한 허가·공급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산모 중 35세 이상 고령 산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6.4%에서 2024년 35.9%로 증가했다. 산모 10명 가운데 약 4명이 고령 산모인 셈이다. 같은 기간 평균 출산연령도 32.4세에서 33.7세로 높아졌다.

고령 임신은 임신성 고혈압과 전자간증의 대표적인 위험인자로 꼽힌다. 최근 임신중독증 환자도 증가세를 보이면서 임신부 고혈압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약제 선택지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고혈압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임신부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경구 항고혈압제는 사실상 서방형 니페디핀과 암로디핀 계열에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제적으로는 라베탈롤이 주요 치료 옵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2년 국제학술지 NEJM에 발표된 다기관 무작위 대조시험인 CHAP 연구는 임신 중 만성고혈압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전략의 임상적 의미를 확인했다.

이를 반영해 미국심장학회(ACC)·미국심장협회(AHA)의 2025년 가이드라인에서도 서방형 니페디핀과 함께 라베탈롤을 임신부 만성고혈압의 주요 우선 권고 약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라베탈롤 경구제를 사실상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한국GSK가 국내에 공급했지만 이후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공급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학회는 국내 제약사가 라베탈롤 생산을 재개하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위해 비교대조약으로 사용할 오리지널 제품이 국내 시장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생산을 통한 공급 재개를 위해서는 비교대조약 확보 등 별도의 절차가 필요해 진입 장벽이 크다는 설명이다.

고혈압학회는 "해외 제품을 활용한 우회적인 도입 시도도 있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며 "일본에서 라베탈롤을 생산하는 제약사의 제품을 국내에 도입해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진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관련 절차가 식약처 심사 과정에서 지연되면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산모와 태아의 안전과 직결되는 필수의약품의 경우 일반적인 허가 절차와 함께 공중보건상 필요성을 고려한 신속한 심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학회는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은 라베탈롤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2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필수의약품 공급 부족·중단 사례는 총 307건으로 집계됐다. 공급 부족이 158건, 공급 중단이 149건이다. 이 가운데 대체 의약품이 없는 사례도 45건에 달했다.

제조·수입업체가 소수에 집중된 품목도 적지 않다. 필수의약품 488개 품목 가운데 51.8%인 253개 품목은 제조·수입업체가 2곳 이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업성이 낮은 필수의약품일수록 시장에서 공급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임신부나 소아처럼 치료 대상이 제한적이고 대체 약제도 많지 않은 분야에서는 시장 논리만으로 안정적인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회는 "임신부 고혈압처럼 대체 약제가 제한적이고 공중보건상 중요성이 높은 의약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속심사 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생물학적동등성시험과 품목허가에 필요한 안전성·유효성 검토는 충실히 진행하되, 임신부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심사 우선순위를 높이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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