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가 부쩍 예민해졌어요."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내고, 틱도 심해진 것 같아요."
"평소 잘 듣던 약이 갑자기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여름철 소아청소년 진료실에서 흔히 접하는 부모들의 고민이다. 특히 폭염이 이어지면서 아이의 정서 변화나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 틱장애 등의 증상이 더 심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성북우리아이들병원 마음튼튼센터 송민재 교수는 "현재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더운 날씨가 ADHD나 자폐스펙트럼장애, 틱장애 자체를 직접 악화시킨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며 "다만 폭염으로 인한 수면 부족과 탈수, 생활리듬 변화, 감각 스트레스 등이 아이의 신체와 뇌에 부담을 주면서 기존의 정서·행동 문제를 일시적으로 두드러지게 만들 가능성은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도 고온 노출과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사이의 연관성이 확인됐다. 28편의 연구를 종합한 결과, 고온에 노출된 아동·청소년은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방문하거나 입원할 위험이 약 13% 높았으며, 우울 증상 등 정신건강 문제 전반의 위험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더위가 정신질환을 직접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킨다는 의미보다는, 기존에 정신건강 취약성을 가진 아이들에게 고온 환경이 추가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여름철 아이의 행동 변화에서 먼저 살펴볼 부분은 수면이다. 기온이 높은 밤에는 체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깊은 수면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수면 시간이 줄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다음 날 피로감이 커지고 집중력과 감정조절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특히 ADHD 아동은 수면 부족이 집중력 저하와 충동성 증가로 이어지면서 평소보다 증상이 두드러져 보일 수 있다. 틱장애 역시 피로와 스트레스, 수면 부족 등에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틱이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여름방학이라고 취침과 기상 시간이 지나치게 늦어지지 않도록 평소와 비슷한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수분 부족이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체온 조절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갈증을 제대로 느끼거나 물을 챙겨 마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벼운 탈수만으로도 피로감과 두통, 어지러움,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가 평소보다 짜증을 내거나 활동성이 떨어지는 등 행동 변화로 나타날 수 있다. 야외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물을 규칙적으로 마시도록 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수분과 휴식을 함께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
감각 자극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높은 습도와 땀에 젖은 옷, 강한 햇빛, 에어컨이 가동되는 실내와 무더운 실외의 급격한 온도 차 등은 일부 아이에게 상당한 감각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송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감각 처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더위와 습도, 불쾌한 촉감 등이 겹치면서 불안이나 짜증, 반복행동 등이 평소보다 증가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무조건 아이의 장애 증상이 악화됐다고 판단하기보다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름방학에 따른 생활패턴 변화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반복되면 생체리듬이 흔들리고, 야외활동과 운동량이 줄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게 될 수 있다. 여기에 스마트폰이나 영상 시청 시간이 늘어나면 수면과 집중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폭염 자체보다 수면 부족, 활동량 감소, 생활리듬 변화, 수분 부족, 감각적 불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이의 행동과 정서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 아이의 증상이 갑자기 심해졌다고 해서 반드시 약물의 효과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최근 수면시간이 줄었는지, 취침 시간이 늦어졌는지, 충분히 물을 마시고 있는지, 실내 온도와 습도가 적절한지, 방학 이후 생활패턴이 크게 달라졌는지 등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조절했는데도 집중력 저하나 과민성, 불안, 틱 등의 증상이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해진다면 전문의와 상담해 증상 변화를 평가하는 것이 좋다.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이제 더위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신체와 정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성장기 아동은 성인보다 체온 조절과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 있는 만큼, 여름철에는 증상 자체만 바라보기보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까지 함께 살피는 접근이 중요하다.
송민재 교수는 "더위가 아이의 정신질환을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과 뇌가 받는 스트레스를 높여 평소 가지고 있던 어려움을 더 크게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며 "아이가 평소보다 예민하고 짜증이 늘었다면 질환의 악화부터 걱정하기보다 '요즘 아이가 충분히 자고 있는지, 물은 잘 마시는지, 너무 덥지는 않은지'부터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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