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검체검사는 성인과 채혈 환경부터 다르다. 혈관이 가늘고 한 번에 채혈할 수 있는 혈액량에도 제한이 있다. 아이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안전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의료인력이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정부의 검체검사 수가 개편에는 이러한 소아 의료현장의 특수성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회장 최용재 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는 지난 10월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의결한 검체검사 수가 인하와 관련해 "성인과 아이를 동일한 기준으로 보는 것은 소아의료 현장의 검사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결과"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혈액검사 등 검체검사 수가를 평균 28% 인하하기로 했다. 협회는 성인 검사의 비용과 수익 구조를 기준으로 연령 구분 없이 동일한 인하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라며, 소아 검체검사의 특수성을 별도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소아는 체구가 작아 한 번에 채혈할 수 있는 혈액량에 한계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에서도 소아 채혈량을 24시간 내 전체 혈액량의 1~5%, 8주 동안 10% 이내로 권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혈관이 가늘고 잘 보이지 않아 채혈에 여러 차례 시도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소아 진료에서는 한 번 채혈할 때 필요한 검사를 가능한 한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가 반복해서 바늘에 찔리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채혈 과정에 투입되는 인력도 성인과 다르다. 소아 환자 한 명의 채혈을 위해 간호사 한 명이 혈관을 찾고, 다른 간호사가 아이의 팔과 다리를 붙잡아 안전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보호자 역시 아이를 안심시키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협회는 "무서워 몸부림치는 아이와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달래는 것도 의료진의 몫"이라며 "한 번에 채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 건강보험 수가에 이러한 소아 채혈의 난이도와 추가 인력 투입이 별도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후 1년 미만 영아와 성인에게 동일한 검사 수가가 적용되고, 채혈 행위에 대한 별도의 소아 가산도 없다는 것이다.
협회는 "아이 한 명에게 서너 사람의 손과 시간이 들어가도 검사료는 성인의 혈액을 한 번에 채취해 검사 장비에 투입하는 것과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수가를 추가 인하하는 것은 소아 의료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소아 검체검사를 일률적인 수가 인하 대상에서 분리하고, 정부가 밝힌 응급진료 필수 검사 조정 제외 원칙을 소아 급성 감염 진단 검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기존 진찰료와 입원료에 적용되는 소아 가산과 별도로 채혈 난이도와 투입 인력을 반영한 '소아 검체채취 가산'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절에 따라 입원 환자 수가 크게 달라지는 소아청소년병원의 특성을 고려해 간호인력 기준도 특정 시점이 아닌 연간 평균 환자 수를 기준으로 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용재 회장은 "열나는 아이가 세균 감염인지, 탈수가 얼마나 심한지를 한 번의 채혈로 판단해야 하는 진료 특성의 결과이지 과잉검사가 아니다"며 "어른의 대량·반복 검사를 기준으로 판단한 과보상 문제를 아이에게 같은 비율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가 인하가 결국 소아 진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검사 수가가 실제 투입 비용에 미치지 못하면 의료기관이 채혈 인력을 줄이거나 검사를 외부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손이 모자라면 채혈 실패가 늘고, 그만큼 아이가 여러 번 바늘에 찔릴 가능성도 커진다"며 "원내에서 한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던 검사 결과를 다음 날 받게 되면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시 찾거나,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가족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아 검체검사 수가를 산정할 때 검사 장비의 분석 비용뿐 아니라 숙련된 채혈 인력, 환아의 안전한 자세 유지, 보호자 설명, 재채혈 최소화, 신속한 결과 확인에 필요한 자원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 진료 기반 유지를 위한 별도 보상체계 마련도 제안했다.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불가피한 의료적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처럼, 지역 소아 입원과 야간진료를 담당하는 병원급 의료기관도 소아 진료 원가와 필수 기능 유지 비용을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회장은 "소아 검체검사는 시작부터 성인과 다르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며 "소아 의료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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