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진단과 치료, 신약 개발 등 보건의료 전반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의료 AI 활용의 국제 원칙을 제시했다. AI의 최종 판단과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기술 혁신과 환자 안전을 함께 확보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의료 AI의 혜택을 특정 국가나 계층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필수의료 공백과 국가 간 보건의료 격차를 줄이는 데 활용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와 WHO는 21일 서울 코엑스마곡 컨벤션센터에서 '2026 세계 바이오 서밋'을 공동 개최하고, 개회식 직후 '책임 있는 혁신과 글로벌 연대를 위한 AI 헬스케어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다. WHO 사무총장이 회원국 정부와 함께 보건의료 AI의 기본 원칙을 담은 국제 선언을 공동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현장 브리핑에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과 11년 만에 한국을 공식 방문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이 참석해 선언문의 주요 내용과 향후 추진 방향을 설명했다.
먼저 정은경 장관은 "AI가 질병의 조기 진단과 신약 개발은 물론 필수의료 서비스 제공에도 혁신적인 가능성을 열고 있다"며 "다만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지 않고 의료 접근성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인간 중심의 활용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 현장에서 AI를 활용하더라도 의료인의 감독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AI가 제시한 분석과 예측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이 결과를 검토하고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취지다. 의료 AI의 법적·윤리적 책임 역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중심으로 다뤄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문에 담았다.
정 장관은 "의료 현장의 AI 도입은 반드시 의료인의 철저한 감독 강화를 전제로 한다"며 "의료 AI에 관한 최종 판단과 법적·윤리적 책임은 인간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선언문을 통해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AI 기술의 빠른 확산 자체가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속도가 곧 진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Speed is not progress)"라며 "의료 AI의 안전한 활용을 위해 임상적 근거와 투명성, 데이터 보호, 안전성 검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AI를 보건의료에 도입할 때는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어떤 혜택과 위험을 가져오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기술 활용을 서두르기보다 환자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를 확보하면서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AI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칼이 빵을 자르는 유용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해칠 위험도 있지만, 위험성만으로 사용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AI 역시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잠재력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적절한 규제와 책임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의료진과 환자의 피해 구제에 관한 국제적 기준은 아직 단일한 해법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보건의료 현장에서는 AI를 활용해 지역 간 의료격차와 필수의료 인력 부족 등 미충족 의료 수요를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정 장관은 AI를 통해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진료 역량을 보완하고, 필수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국제 협력 방안으로는 복지부와 WHO가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인 '글로벌 AI 허브' 사업을 제시했다. 의료 AI의 안전성을 검증할 실증 모델과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중저소득국에 보급해 국가 간 보건의료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22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2026 세계 바이오 서밋에는 암젠·노보노디스크·로슈 등 글로벌 제약기업과 오픈AI를 비롯한 기술기업, 각국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참석자들은 신약 개발 가속화(New Science), 병원 업무의 AI 전환(New Value), 고위험 AI 투자를 뒷받침할 공공·민간 재원 조성(New Finance) 등을 주제로 보건의료 혁신과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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