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소명의식 탓할 때 아냐"…병원의사협의회, 군의료 인력정책 비판

"군의관·공보의 감소는 희생정신 부족 아닌 복무기간·인력정책 문제"

김아름 기자 2026.09.03 16:07:34

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들이 군의관·공중보건의사(공보의) 수급 위기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의 '소명의식'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의 발언 철회와 사과를 촉구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3일 "군의관과 공보의가 사라지는 이유는 소명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실패한 군의료 인력정책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유영하 의원은 지난 8월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 단축 논의와 관련해 의사들이 소명의식을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해 복무기간 단축을 요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병의협은 "국가의 잘못된 제도 설계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젊은 의사들의 직업윤리 문제로 전가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병의협이 지적한 핵심은 군의관·공보의 수급 감소가 이미 상당 기간 예견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이다. 성명서에 따르면 공보의 신규 편입 규모는 2015~2022년 연간 500~800명 수준이었지만 2024년 249명, 2025년 250명으로 감소했고 2026년에는 98명까지 떨어졌다.

의대생의 현역병 입대도 크게 늘었다. 현역병으로 입대한 의대생은 2020년 150명에서 2024년 1363명으로 증가했으며, 2025년 8월까지는 2838명에 달했는데, 병의협은 이 같은 현상이 향후 군의관·공보의 공급 감소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현역병은 18~21개월을 복무하는 반면 군의관과 공보의는 군사교육 기간을 제외하고도 3년을 복무해야 한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병의협은 "과거에는 복무기간 차이를 상쇄할 정도의 처우상 이점이 있었지만 현역병 처우가 크게 개선되면서 그 차이가 사실상 사라졌다"며 "의대생들이 18개월가량의 현역병 복무를 선택하는 것은 소명의식의 상실이 아니라 제도적 유인구조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군의관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협의회는 문제의 접근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복무기간을 줄이면 군의관이 부족해진다는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거꾸로 보고 있다"며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복무기간을 현실화하지 않았을 때 앞으로 누가 군의관과 공보의로 복무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의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의대 재학생의 99.0%가 군의관·공보의 지원 감소의 원인으로 현역병보다 긴 복무기간을 지적했으며, 복무기간이 24개월로 단축될 경우 공보의 복무 의향은 94.7%, 군의관 복무 의향은 92.2%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근거로 현재 복무기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군의관·공보의 공급체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군의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복무기간을 유지하거나 인원을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군의료체계의 비효율성부터 점검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현재 군의료 현장에서 전문의의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력 배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병의협은 "이러한 비효율적 편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재 인원을 유지하려면 복무기간을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책의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며 "먼저 불필요한 군의관 편제를 줄이고 의료인력의 전문성에 맞게 군의료체계를 개편한 뒤 정말 필요한 군의관 숫자가 몇 명인지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영하 의원이 의사의 소명의식을 강조한 데 대해서도 반박하며 "의사에게 소명의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다른 국민보다 현저히 긴 병역의무를 감수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돈을 좇는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군의관·공보의 수급 감소는 의과대학 여학생 비율 증가,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현역병 처우 개선 등 여러 요인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라며, 정부가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고도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병의협은 장기적으로는 강제적인 병역대체 방식에서 벗어나 '국방 트랙'과 '지역 트랙' 등 자발적으로 군의료와 공공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존 군장학생 제도 등을 확대·개편해 장학금과 합리적인 처우, 경력개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사들이 군의료와 지역공공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유영하 의원을 향해 군의관·공보의 수급 붕괴라는 국가 정책의 실패를 젊은 의사들의 '돈'과 '소명의식' 문제로 치환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국회와 정부에는 복무기간 현실화와 함께 군의료·지역공공의료 통합 운영, 비효율적인 군의관 편제 개편, 국방·지역 트랙 구축, 처우 개선 등을 포함한 근본적인 제도개혁에 즉각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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