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협회가 향후 10년의 새로운 방향으로 '현장 중심의 실용 학술'을 내걸었다. 투석실에서 매일 환자를 마주하는 개원의와 봉직의의 경험을 학술과 연구의 중요한 자산으로 삼고, 이를 진료의 질 향상은 물론 제도 개선과 정책 제안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대한투석협회(이사장 김상욱)는 지난 29일부터 30일까지 정책토론회와 학술대회를 열고 협회의 역할과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에는 사전등록자 760명을 비롯해 현장 참석자까지 약 900명이 참여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투석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학술의 중심으로 가져오자'는 데 모아졌다. 국제적인 신장학 연구와 별개로 실제 혈액투석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와 의료진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공유하고, 이를 교육과 연구를 거쳐 객관적인 근거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김상욱 이사장은 "신장학회가 국제화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실제 혈액투석과 관련된 진료나 연구 분야에서는 현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며 "그 부족한 부분을 투석협회가 채워야 한다. 이를 표현하면 '실용적인 학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현장의 현실을 학술과 연구, 교육으로 발전시키는 협회 운영을 해나가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며 "안전한 투석 환경과 실용적인 교육·연구, 자율적인 질 향상을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을 갖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투석협회가 주목하는 것은 거창한 연구 주제만이 아니다. 투석환자의 건체중을 어떻게 설정하고 관리할지, 고인산혈증과 식이 문제를 어떻게 조절할지, 투석 중 저혈압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 의료진이 진료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문제 자체를 중요한 학술적 과제로 보고 있다.
특히 개원의와 봉직의가 가진 임상 경험을 적극적으로 학술활동에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개별 의료진이 투석실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회원 간 공유에 그치지 않고 자료화하고 연구해 공동의 지식과 근거로 발전시키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상욱 이사장은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다"며 "회원들이 원하는 다양한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면서 기존 학술단체와 협조하고 공존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하고 싶다"고 밝혔다.
'환자 중심·현장성·실용성' 8대 가치 제시
협회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환자 중심성, 현장성, 실용성, 근거성, 자율성, 동료성, 투명성, 지속가능성을 8대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가장 앞에 놓인 원칙은 환자 중심성이다. 투석의료와 관련한 모든 활동의 출발점을 환자의 안전과 권익에 두겠다는 의미다.
현장성은 실제 투석실에서 필요한 문제를 학술과 교육의 주제로 삼겠다는 원칙이며, 실용성은 교육과 지침을 의료진이 실제 진료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현장의 경험을 데이터와 검증을 통해 근거로 발전시키는 '근거성'도 강조했다. 조직 운영에서는 외부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추구하고, 개원의와 봉직의, 지역과 직위 등에 따른 구분 없이 회원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동료성을 중시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결정과 재정, 이해충돌 등에 대한 정보를 회원들에게 공개하는 투명성과 함께 적정 인력, 합리적인 보상, 안전한 근무환경 등 투석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진료환경 개선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협회가 바라보는 현장의 범위는 투석기 앞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령 투석환자가 일주일에 세 차례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위해 겪는 이동 문제, 장시간 투석 과정에서 필요한 식사와 영양관리, 심리·사회적 변화, 가족의 돌봄 부담 등 환자의 일상까지 정책적 관심 영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투석환자의 이동권은 협회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표적인 현장 과제다.
이를 두고 김성남 정책자문단장은 "투석환자는 어제와 오늘의 몸 상태가 다르고 감정과 심리적인 변화, 가족에 대한 돌봄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연구뿐 아니라 경험과 소통이 중요한 영역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이런 부분을 제시하는 것이 투석협회만이 가질 수 있는 독립적인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협회는 한국신장장애인협회와의 소통을 통해 주 3회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의 이동 문제를 살피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단장은 "의료기관이 차량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국가나 지자체가 환자의 이동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환자가 투석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5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공식적으로 치료식이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 등도 연구하고 정책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앞으로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임상 경험을 교육과 연구, 정책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투석의료 현장을 대표하는 정책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정부나 국회가 정책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때 대한투석협회가 반드시 협상 파트너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단체로 인정받는 것이 임기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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