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의사회 "소생활권으로 진료범위 제한 안돼"

"거주지 기준 의료 이용은 현실과 달라" 소진료권·소생활권 관계 명확히 해야
대면진료 지역 제한하면서 비대면·공공의료 확대하는 비대칭 정책도 문제 제기

김아름 기자 2026.08.12 17:05:11

내과의사회가 정부의 초고령사회 의료체계 구축 과정에서 제시된 '소생활권'을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로 활용하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소생활권이 사실상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진료권으로 적용될 경우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고, 지역사회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원의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한내과의사회는 12일 지난 7월 28일 의료혁신위원회 산하 제9차 초고령사회 의료체계 전문위원회가 발표한 '초고령사회 예방적 보건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지역보건·일차의료 권고안'의 소생활권 개념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내과의사회는 이번 권고안의 문제가 단순히 하나의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8월 6일 제12차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된 범정부 'AI 기본의료 전략'에서도 의료서비스 배치의 공간 단위로 '생활권'이 제시된 만큼 향후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지역 기반 건강증진, 일차의료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과의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소생활권이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나 환자 등록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다.

권고안은 소생활권을 주민이 일상적으로 생활하고 유사한 물리적·사회적 환경과 지역자원을 공유하는 지리적 지역 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기본계획상 소생활권은 인구 2만~5만명 규모의 행정동을 중심으로 하는 개념이다.

내과의사회는 이 기준이 의료서비스에 적용될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와 환자 수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칭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를 일정 지역에 배정하는 인두제와 유사한 형태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일차의료기관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지난 7월 30일 제8차 의료혁신위원회에 보고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추진전략'에서는 전국을 대진료권, 중진료권, 소진료권으로 구분하고 소진료권에서 동네의원과 공공보건의원이 경증 치료와 예방적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또 소진료권이 시·군·구 단위인 반면 소생활권은 행정동 단위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두 개념의 관계와 실제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 및 환자 등록에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 정부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내과의사회는 생활권의 크기를 확대하거나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국민의 의료 이용을 거주지를 기준으로 귀속시키는 발상 자체라는 설명이다.

실제 환자들의 의료기관 선택은 거주지와의 거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직장인은 직장 주변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학생은 학교나 학원 인근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고령 환자 역시 자녀의 동행이나 교통 여건에 따라 거주지와 다른 지역의 의료기관을 찾을 수 있다.

정부 역시 국립중앙의료원 헬스맵 등을 통해 환자의 거주지 외 의료기관 이용과 지역 간 의료 이용 유입·유출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주지 밖 의료 이용이 정책 분석 대상이 될 정도로 보편적인 상황에서 진료 범위를 거주지 중심으로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진료와 AI 기반 의료서비스 확대 과정에서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 간 규제의 비대칭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내과의사회가 제기한 문제다.

'AI 기본의료 전략'에는 AI 기반 비대면 재택협진과 공공의료 AI 고속도로, 지역 국립대병원의 지역 AX 거점 조성 등이 포함됐다. 도서·벽지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 허용, 소아 야간·휴일 진료에서 병원의 비대면진료 허용 검토 등의 내용도 담겼다.

내과의사회는 일차의료기관의 대면진료에는 지역적 제한을 두면서 비대면진료와 AI 협진은 병원급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경우 동네의원에만 규제가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비대면진료는 직접적인 신체검사와 검사 결과 확인에 한계가 있는 만큼 진단의 정확성과 환자 안전,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과의사회는 지역사회 만성질환 관리와 재택의료, 생애말기 돌봄 등을 실제로 담당하는 일차의료 현장의 의견이 정책 설계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역사회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개원의가 정책 논의에서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차의료의 개념과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정부에 소생활권을 보건지소와 건강생활지원센터 등 공공보건 인프라의 배치 단위로 활용하되,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 범위나 환자 등록을 제한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부득이하게 공간 단위를 설정하더라도 거주지만이 아니라 직장과 학교 등 실제 생활 동선을 고려한 복수 귀속을 인정하고, 도시계획상의 생활권이 아닌 실제 의료 이용 흐름을 토대로 지역 단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면진료에는 지역 제한을 적용하면서 비대면진료와 AI 협진은 예외적으로 확대하는 비대칭적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내과의사회는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지역보건과 일차의료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국민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진료받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행정구역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의료체계는 실제 의료를 수행하는 현장의 경험과 국민의 의료 이용 행태를 바탕으로 설계돼야 한다"며 "정부는 소생활권 개념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제도를 실제로 수행할 일차의료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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