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계가 정부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에 병원을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으로 포함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병원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지방 중소병원과 필수의료기관의 폐업으로 이어질 경우 지역 의료공백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한병원협회(회장 유경하)는 1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 의견서'를 재정경제부와 보건복지부,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4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을 한국표준산업분류 세세분류 기준으로 법률에 명시하고, 가업의 정의와 가업상속공제심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그러나 개정안에는 병원을 비롯해 약국, 마트, 버스·택시 운송업, 주차장업, 창고업 등이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병원협회는 이 가운데 병원이 오히려 개정안이 강조하고 있는 '전문기술·경영상 노하우의 승계' 취지에 부합하는 업종이라고 강조했다.
병원에는 수십 년간 축적된 수술 술기와 진료 프로토콜을 비롯해 감염관리, 환자안전, 다직종 협업 등 다양한 전문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는 설명이다. 일부 병원은 의료기기와 디지털헬스 분야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첨단재생의료와 세포치료 등 관련 기술과 연구 역량도 확보하고 있다고 병협은 밝혔다.
병원협회는 병원을 마트나 주차장업, 창고업 등과 동일한 기준으로 제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제외한 업종은 부동산 등 자산 자체가 수익의 주요 원천이거나 자산 이전을 통한 상속세 회피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라는 것이 개정 취지다.
반면 병원은 의료법상 의사 등 법정 개설 주체만 운영할 수 있어 상속인이 의사면허를 갖고 직접 진료와 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승계 자체가 쉽지 않다. 병원의 자유로운 양도·전매 역시 제한되며 의료장비와 특수설비는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단순 자산 이전을 통한 편법 상속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병협의 주장이다.
오히려 병원은 개정안에서 강화된 사후관리 요건을 충족하기에 적합한 업종이라는 설명이다.
개정안은 가업 유지기간 10년, 근로자 수 및 총급여액 90% 이상 유지, 가업용 자산 40% 이상 처분 제한, 상속인의 가업 종사 의무 등을 담고 있다.
병원협회는 상속인이 의사로서 직접 진료에 참여하고 의료인력과 시설을 유지하지 않으면 병원 운영 자체가 어려운 만큼, 이러한 사후관리 요건이 병원의 특성과도 맞는다고 강조했다.
병원협회가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지방 중소병원의 승계 문제다.
개인 개설 병원의 경우 상속 과정에서 최고 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될 수 있는 가운데, 지방 중소병원은 토지와 건물, 의료장비 등 비유동자산 비중이 높아 상속세 납부를 위한 현금 마련이 쉽지 않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병원을 인수할 수 있는 수요도 충분하지 않아 상속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매각이나 폐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응급·중증·분만·소아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의 승계가 중단될 경우 지역 의료공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게 병협의 설명이다.
필수의료 병원은 응급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대규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어 상속재산 평가액은 높지만 실제 현금 창출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 병원 승계의 직접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 한 곳의 폐업은 단순히 하나의 의료기관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의 필수의료 기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필수의료 인력과 진료 인프라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워 지역 주민의 의료 접근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병원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병협은 강조했다.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행정, 조리, 시설관리 등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주요 지역 고용주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병원협회는 "병원 승계가 단절될 경우 의료서비스뿐 아니라 지역 고용과 지역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의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에 '병원'을 추가해 줄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어 "병원이 축적해 온 전문기술과 경영 노하우가 지속적으로 승계되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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