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제94주기 추모식이 10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효창공원 내 이봉창 의사 묘전에서 거행되었다. 사단법인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보훈 관련 인사와 일반시민 약 100명이 참석했다.
이봉창 의사(1901년 8월 10일~1932년 10월 10일)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헌신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거사를 준비했으며, 1931년 12월 한인애국단 제1호 단원으로 가입했다. 이듬해인 1932년 1월 8일에는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의 행렬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일본 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1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심장부에서 우리 민족의 자존과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침체돼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1962년 이봉창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일왕을 직접 겨냥해 독립운동의 전기를 마련한 역사적 공적을 고려하면,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이 추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장제스가 이끌던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는 등 독립운동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단순히 거사의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이봉창 의사 선양사업에는 빙그레 김호연 회장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인 김 회장은 후손 없이 순국한 이봉창 의사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해 듣고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를 재건해 회장을 맡았다. 또한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했으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회장과 독립기념관 이사 등을 역임하며 독립유공자 선양과 지원에 힘써왔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은 백범이 꿈꾼 문화국가의 이상과 평화정신을 국내외에 알리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올해는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 '유네스코 기념해'로 지정된 뜻깊은 해다. 백범이 강조한 독립과 평화, 높은 문화의 힘으로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자 했던 문화국가의 비전이 세계가 함께 기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오랜 기간 독립운동 관련 캠페인과 후원 활동을 이어온 빙그레의 행보에도 김 회장의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투영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수년째 추모식과 의거 기념식에 참석해온 박지민 학생이 이봉창 의사에게 바치는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많은 분들이 이봉창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나누었으면 한다"며 "특히 오늘 박지민 학생의 사례처럼, 어린 학생들이 이봉창 의사의 숭고한 희생이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것임을 오래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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