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아산병원 간호사 사건, 의사 수 증원만으론 해결 안돼"

핵심은 필수과 전문의 부족… 의료분쟁특례법 제정도 시급

김아름 기자 2022.08.09 09:36:28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맡을 의사가 없어 사망한 사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침묵을 지킨 대한의사협회가 입을 열었다. 

핵심은 전체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분야, 필수과의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당초 어지럽게 확산되는 논란을 심화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맞대응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하지만 본질을 외면하고 사건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변질된 주장을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침묵을 깬 배경으로 꼽았다.

◇ "의사수 증원은 오답"

의협은 "무작정 의사수를 증원한다고 해서 필수의료 과목의 전문의 부족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왜곡된 환경에서는 오히려 늘린 그만큼 미용분야 등 비급여·저위험 분야의 의사와 해당 의료기관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과계 특히 흉부외과, 뇌혈관외과, 산부인과 중 분만분야 등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소위 기피과 현상에 대해 단지 어렵고 험한 것을 꺼려하는 세대와 가치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며 "사명감과 사회적 책무를 근간으로 의학에 몰두하고 전념하고자 하는 의사들에게 합당한 설자리와 여건이 현실적으로 마련되어 있는지 근본에 접근해야 풀릴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 "왜 특정 진료과, 특정분야를 기피하고, 전문의가 부족한 것인가?"

우리나라 주요 사망률 질환은 암, 심장, 뇌혈관 등으로 현행 기피과가 이에 해당되지만, 매년 필수 진료과목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는 반복되고 있다.

전문의 취득 후 타과로의 진료과 변경 현상마저도 심화되고 있다. 외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진료과목의 전문의를 취득 후 다른 진료과목을 진료하고 있다는 의사의 비율(2016 전국의사조사)을 보면 (흉부외과) 40.7%, (외과) 12.8%, (산부인과) 10.6%, (응급의학과) 4.3%로 나타난다.

뇌혈관질환 등 긴급수술을 요하는 경우 대부분 응급한 위독사항으로 발생하기에 해당 과목 전문의는 1년 365일 온콜(on-call, 긴급대기)로 당직을 서야하며, 전문의 1인이 해결할 수 없기에 펠로우 및 관련 의료인력도 같이 온콜대기를 하게 된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이와 같은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전문의를 비롯해 지원 의료인력이 전반이 부족하여 규모가 큰 병원이라 할지라도 극소수의 인원이 돌아가며 365일 전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며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온콜당직을 했음에도 환자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비 등을 지급하지 않거나 실제 야간에 수술을 하는 경우라도 이에 대한 보상과 피드백이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필수의료 분과의 지원과 진료를 기피하게 되고, 점점 해당 전문의가 고갈되다보니 소수의 전문의가 그 부담을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는 것. 

대동맥 박리수술의 경우에도 미국 63,359,385원에 비해 우리나라는 8,968,140원으로 14.1%에 불과한 수준

또 우리나라 출혈성 뇌졸중 환자 100명 중 사망자는 15.4명으로 OECD 평균 22.6명보다 낮은 편이고, 허혈성 뇌졸중 환자 100명 중 사망자도 3.5명으로 OECD 평균(7.7명)보다 낮아, 뇌졸중 사망률이 낮은 수준이다.

7개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대장암, 직장암, 소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폐암, 위암에 대한 5년 생존율(2010년-2014년)은 대부분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으로 특히, 위암 생존율의 경우 OECD 평균 29.6%에 비해 우리나라는 68.9%로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중증 질환 분야의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에서도 세계최고수준의 의료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그간 노력해온 우리나라 의료진의 실력과 헌신을 반증하는 것이지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 

◇"특정과 기피현상과 여건이 문제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의협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획기적 처우개선책을 통한 기피과 인식개선 및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제도개선을 통해 필수의료 분야에 적정한 수가개선과 진료여건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전공의들이 지원할 수 있는 유인요소와 기전 마련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로써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보상체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의료분쟁특례법, 분쟁비용 국고지원 및 필수의료지원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의협은 "필수진료과목을 기피하는 이유가 기본 업무가 과중하고 응급, 당직이 많으며  의료사고도 빈번하나 장래성 없는 낮은 수가가 전공의 설문조사 결과로 나와있다"며 "고난이도 수술에 따른 빈번한 의료분쟁으로 인한 의료인 신분의 불안전성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현행 보건의료관계법령 뿐 아니라 많은 법령이 의료기관과 의사를 규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통제하고 제재하는 법이 아닌 필수의료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법 제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뇌혈관 수술 등 해당 진료수가 현실화도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수가 체계와 상대가치 점수제도 하에서 뇌혈관 수술에 대한 비용책정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는 해도 응급, 난이도, 위험도를 고려하면 의료수가가 낮게 책정되어 우선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수가조정이 일차적으로 시급하다는 것. 

의협은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뇌질환 관련 수술비용을 보더라도 일본에 비해 대부분 20%내외의 수준에 불과하다"며 "대동맥 박리수술의 경우에도 미국 63,359,385원에 비해 우리나라는 8,968,140원으로 14.1%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Source: 세계신경외과학회, 세계 신경외과 인력 지도(2016)
World Federation of Neurosurgical Societies, 2016 World Neurosurgery Workforce map

이 외에도 △필수 의료 인력 수련비용의 국가 보장 △신경외과 전공의 우선 배정 등 중증 진료 분야 인력 확보 △권역, 지역별 민간병원과 연계한 필수의료 민관 협력(야간 온콜 시스템 도입) △중증 필수 의료 분야 지원을 위한 다양한 재원 마련 △중증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국가책임제 시행 △지역 필수의료 육성 ;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이 중요 △ 필수의료 우선순위, 수가정상화 등 독립된 협의체 운영 필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의협은 "이번과 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다급하게 유관기관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각종 회의 및 정책간담회, 토론회 등을 통해 진위파악과 대책을 마련한다고 분주한 모습만 반복됐다"며 "하지만 대부분이 일시적인 미봉책을 발표하는 정도에서 지나갔고 향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면 또다시 일련의 형식적인 절차와 과정이 재연되는 장면을 우리 의료계는 처절한 심정으로 목격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협회가 제안하는 본 의제들이 즉시 시행되고, 중장기 과제로 별도 추진해야 할 부분은 중간 동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 그리고 의료계 모두가 굳은 의지를 발현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의사협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 필수 의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적 책임을 재차 강구하며 고인 및 유족, 국민에게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의 불씨를 살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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