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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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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식량은 공기와 물 다음으로 인간의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므로 식량을 확보하는 일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하는 일이다.
글로벌화 시대에 식량을 꼭 우리 손으로 생산하기 보다는 외국의 값싼 식량을 사먹는게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요할 때 사올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 식량 에너지의 반 이상, 곡물 수요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지금은 필요한 식량을 돈만 주면 어디에서든 사올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앞으로 세계의 식량사정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기후온난화에 의한 잦은 기상이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공업국들의 경제성장에 의한 동물성식품 소비증가와 사료곡물의 급격한 수요증가, 식량을 이용한 바이오연료의 생산 증가 등으로 식품가격이 폭등하고 식량 수출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의 식량을 우리의 힘으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 즉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식량주권은 △식량자급 △해외농장에서의 식량 생산 및 공급 △해외유통라인의 확보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중에서 국내 생산에 의한 식량자급이 가장 확실한 식량 확보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국토의 70%이상이 산림이고 인구밀도가 세계 3위로 높은 나라이므로 지금처럼 기름진 음식을 양껏 먹으려면 100% 식량자급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쌀의 자급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것을 성취했다. 그러나 쌀 섭취량이 지난 30년간 반으로 줄었고 쌀이 전체식량에 기여하는 정도가 25% 이하로 내려앉았다. 쌀의 자급만으로 식량안보를 확보할 수 없게된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은 기본적으로 쌀과 콩으로 구성돼 있다. 쌀밥에 콩반찬(콩나물, 두부, 된장찌개)만 있으면 영양적으로 우수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쌀과 함께 식용콩의 자급이 절실히 필요하다. 식용콩의 수요량은 40만톤이나 국내 생산량은 13만톤 수준이다. 식용콩 자급을 정책목표로 삼고 노력하면 자급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식용콩의 자급을 정책목표로 삼은 적이 없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크게 낮아진 원인은 가축사료의 수입에 주로 기인한다. 사료용 곡물 자급률은 3%미만으로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곡물수입량의 60%가 가축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조사료(볏짚과 사료작물)도 20% 정도 수입하고 있다. 아무 제한 없이 축산을 장려한 정책 결과이다.
이에 따라 가축분뇨를 완전 자가 소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유럽의 축산업 허가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료의 10~20%만이라도 자가 생산을 의무화하는 축산업 허가제를 실시하여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환경을 살려야 한다.
최근 해외 농장 개발에 투자를 늘리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해외농장 개발에 민관이 협력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도 아프리카 등지에 대규모 해외농장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해외농장 개발은 실패 확률이 높고, 상대국의 정치적 불안정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생산물을 국내에 반입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해외 농장이 필요할 때에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는 해외 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그리 크지 않다.
해외 곡물유통망을 우리것으로 확보하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방법이나 기존의 곡물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망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의욕적으로 해외 곡물유통회사를 인수하겠다고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 놓고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 우리가 이일에 너무 경험이 없고 쉽게 생각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젠노(全農)가 미국에 곡물유통회사를 설립하는데 20년 이상의 피나는 노력을 들였다.
일본은 상사 직원이 시카고 선물거래시장에 파견되면 그곳에서 정년까지 지낸다고 한다. 그 시장을 파악하려고 밤새워 공부해야 되고 마침내 전문가가 된다. 우리도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 보냈으나 2~3년 놀다오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결국 구경꾼만 양산한 것이다. 이러한 인사행정의 차이가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일본의 곡물에이전트로부터 식량을 사오는 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기업도 전문가를 키우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도 우리처럼 곡물자급률이 30% 수준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필요할 때 그들의 힘으로 세계 곡물시장에서 곡물을 사올 수 있고, 남아서 한국에까지 되팔 수 있는 나라이다. 다시말해 일본은 식량자주율이 100%를 넘는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식량자주율이 식량자급률과 같은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식량안보에 대한 정책이나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앞에서 언급한 식량자급률 제고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사안이다. 쌀이 남아돈다는 생각으로 식량생산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 현행 농업정책은 하루속히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는 특수상황에 있는 나라이다. 통일이 되면 당장 170~250만톤의 쌀이 더 필요하게 된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최소한 120만톤의 쌀을 통일미 명목으로 항시 비축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4844억원으로 2013년도 외교통일 예산의 11.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한 저소득 영세민의 영양개선과 복지향상을 위해 쌀쿠폰 무상지원 제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전체 인구의 7%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에게 일인당 월 10kg의 쌀을 무상 지원함으로서 진정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추가예산은 8106억원으로 2013년도 복지예산의 0.8%에 불과하다. 이 제도의 시행은 통일 이후 북한의 저소득 주민에게 식량을 무상으로 제공할 법적 근거가 된다. 이와같이 쌀의 적극적인 수요창출을 통해 연간 480만톤의 쌀이 필요하게 되며, 쌀 증산 정책으로 우리 농정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