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필수의료의 붕괴는 더 이상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전북대학교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이 전담 교수의 사직으로 운영 중단 위기에 놓이면서 호남권 신생아 의료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의료계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인력 이탈이 아닌, 한 명의 의료진 헌신으로 유지돼 온 필수의료 시스템이 결국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특히 지역 거점 신생아중환자실 기능이 약화될 경우 중증 신생아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이는 전국 분만 인프라의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긴급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회장 김재연)는 29일 전북대학교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운영 중단 가능성과 관련해 "호남권 신생아 의료의 중대한 공백이자 대한민국 분만 인프라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라며 보건복지부와 국회의 즉각적인 개입을 요구했다.
이번 논란은 전북대학교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전담 김진규 교수가 지난 28일 열린 '분만 인프라 회복을 위한 정책포럼'에서 사직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촉발됐다.
김 교수는 "주당 90시간 근무와 50시간 연속 당직을 이어왔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칼을 품고 스스로를 찌르는 심정이었다"고 토로하며 장기간 누적된 필수의료 현장의 현실을 전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김 교수의 사직을 개인의 선택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전북대병원이 교원 연봉 상한을 폐지하는 등 가능한 모든 행정적 지원책을 마련했음에도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는 특정 병원의 근무환경 문제가 아니라 신생아중환자의학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국가적 구조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명의 의료진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권역 신생아중환자실이 멈춰서는 현실 자체가 현재 필수의료 체계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더 이상 의료인의 희생만으로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특히 호남권 신생아중환자실 공백이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증 신생아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면 수도권 의료기관 역시 수용 능계에 직면하고, 이는 전국적인 분만·신생아 의료체계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특정 권역의 붕괴가 다른 권역의 의료부담을 가중시키는 '풍선효과'를 낳으며 국가 필수의료 체계 전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정부와 국회에 ▲보건복지부 장관의 긴급 행정조치를 통한 전북대병원 NICU 정상화 ▲호남권 신생아 전담 의료인력 긴급 파견과 민·형사 보호체계 마련 ▲호남권 중증 모자의료센터 우선 확충 및 대폭적인 재정 지원 ▲분만수가 현실화와 필수의료 유지 보상제 도입 ▲고의·중과실이 없는 분만사고에 대한 형사면책과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제 강화를 골자로 한 5대 대책을 제안했다.
김재연 회장은 "분만과 신생아 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필수의료"라며 "지역 거점병원조차 의료진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은 현재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만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의료진이 실제로 현장을 지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라며 "필수의료를 개인의 사명감이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뒷받침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만은 한 사회가 다음 세대를 맞이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료"라며 "이번 사태를 방치한다면 지역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분만체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