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빠르게 위험 신호를 포착하느냐이다. 개별 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공중보건의 관점에서는 지역사회 전체의 감염병 발생 양상을 조기에 인지하고 확산 흐름을 파악하는 감시체계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질병관리청과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을 중심으로 독감 의사환자 감시, 호흡기바이러스 실험실 감시, 장관감염증 병원체 감시 등 다양한 국가 감염병 감시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감시체계는 국내 감염병 대응 수준을 크게 향상시켜 왔지만, 현대 대도시의 복잡하고 빠른 감염병 전파 양상을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한계도 존재한다. 병원 방문 여부, 환자 동의, 검사 접근성, 비용 등의 제약으로 인해 실제 지역사회 유행 규모를 실시간으로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존 감염병 감시체계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감시 방식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Wastewater-based Epidemiology)'이다. 감염병 원인 병원체는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분변이나 생활하수를 통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하수는 지역사회 전체의 감염병 발생 수준을 반영하는 중요한 환경 지표가 될 수 있다. 특히 하수 감시는 의료기관 방문 이전 단계의 감염 상황까지 포착할 수 있어 감염병 유행의 조기 경보체계로서 높은 가능성을 가진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하수 기반 감시체계를 국가 공중보건 감시체계의 하나로 확대·운영하고 있으며, 감시 대상 또한 코로나19를 넘어 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항생제 내성균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2022년 시범사업 이후 전국 단위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체계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2023년 전국 64개 하수처리장을 대상으로 본 사업이 시작된 이후, 2026년 현재 103개 시설까지 확대됐으며 감시 병원체 또한 코로나19, 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항생제 내성균, 엠폭스로 다양화되고 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역시 2022년 시범사업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서울시 4개 물재생센터(중랑, 탄천, 서남, 난지)를 대상으로 매주 하수 시료를 채취해 감시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울시 전체 규모의 감염병 발생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약 930만명이 거주하는 초대형 도시로, 지역별 인구 특성과 생활환경의 차이가 매우 크다.
기존 물재생센터 중심 감시는 서울 전역의 전반적인 유행 규모를 파악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외국인 밀집지역, 학교 기숙사, 병원 밀집지역 등 특정 지역의 특수성과 국외 유입 가능성을 세밀하게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5년부터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협력해 '서울형 하수 기반 감염병 정밀감시체계' 구축을 추진했다. 서울시 내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기초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할 자치구와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구로구 내 빗물펌프장 3개소를 신규 감시지점으로 선정했다. 기존 대규모 하수처리장 중심 감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중간 유입지점 기반의 정밀감시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지역 내 감염병 발생 특성과 유입 양상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해당 지점에서는 월 2회 하수 시료를 채취해 TAC(Taqman Array Card)를 기반으로 코로나19 등 27종의 다양한 감염병 원인체를 동시 분석하고 있다. 또한 항생제 내성균의 분리배양 및 내성유전자 분석도 병행함으로써 단순 감시를 넘어 환경 기반 감염병 대응 역량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지속적인 공동연구 및 학술교류를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협력 관계에 있는 일본 교토대학교 연구진과의 교류회 참여 등을 통해 관련 연구 동향과 기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 분야의 기술 및 정보 교류를 확대하고, 관·학·연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향후 국제 협력 확대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는 단순한 연구사업을 넘어 미래 감염병 대응체계의 새로운 축이 되고 있다. 특히 서울형 정밀감시체계는 대도시의 지역적 특성과 생활환경 차이를 반영한 맞춤형 감시 모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향후 감시지점 확대와 데이터 축적이 이뤄진다면, 지역별 감염병 유행 특성 분석은 물론 국외 유입 감염병의 조기 탐지와 선제적 방역 대응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촘촘하고 실효성 있는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