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건산업의 해외 진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디지털헬스 분야를 중심으로 수출과 현지 사업화가 이어지면서 보건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제조 수출 산업이 아니라 해외 인허가와 임상 검증, 보험 등재, 유통망 확보까지 포괄하는 고난도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주요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규제 강화는 국내 기업의 진입 속도를 늦추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고, 정부와 업계 모두 이를 정면 돌파할 대응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의료기기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수출 주도형 구조를 기반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정부는 2027년까지 수출 2배, 세계 5위 수출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다. 계획의 핵심은 연구개발, 임상 실증, 시장 진출, 규제 합리화를 축으로 한 전주기 지원이다. 체외진단, 영상진단, 치과 분야 등 주력 품목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디지털헬스, 의료용 로봇, 인체삽입형 기기 같은 유망 분야에 대한 투자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를 강화한다. 둘째, 개발된 제품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검증될 수 있도록 임상 실증 인프라를 넓힌다. 셋째, 해외 인허가와 규제 장벽에 대응할 수 있는 상담·정보 제공·전문 컨설팅을 촘촘히 구축한다. 넷째,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혁신기술은 별도 규제 틀을 통해 신속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본다. 결국 정책은 "만드는 지원"보다 "들어가게 하는 지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큰 기회이지만,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핵심 시장은 허가 기준이 더 엄격해지고 있으며, 품질·안전성·추적관리 요구 수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기업의 해외 진출 전략은 단순한 수출 확대보다 지역별 규제 이해, 현지 파트너십 구축, 임상자료 확보, 법률·특허 대응까지 포함하는 복합 전략으로 바뀌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특히 인허가 전문인력과 글로벌 규제 대응 경험이 해외 성패를 가르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의 효능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국가별로 상이한 보험 약가 제도와 인허가 장벽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진입 체계를 짜느냐가 본질"이라며 "특히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해외 규제 전문가 확보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서비스와 디지털헬스 분야도 해외 진출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헬스 시장은 예방·진단·치료 전반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인공지능 진단보조, 디지털치료기기, 원격 모니터링 솔루션 등이 차세대 수출 품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 분야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 의료데이터 활용, 보험 체계, 임상근거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이 높다. 의료기기와 마찬가지로, 실제 활용성과 제도 적합성을 함께 입증하는 실증 기반이 필수라는 뜻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런 복잡성을 반영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의료기기 부문에서는 해외 인허가 대응을 위한 전담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권역별 진출 전략과 현지 거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기산업 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전주기 컨설팅과 정보 통합, 해외 협력기관 연계를 강화해 기업이 필요한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제약바이오와 의료기기 모두에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자체 역량"과 "공공 지원"의 결합이며, 정부는 그 연결 고리를 정책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아직 녹록지 않다. 해외 시장 진출은 단일 제품의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국가별 규제 체계와 보험 수가, 유통 구조, 현지 네트워크까지 종합적으로 통과해야 가능한 구조라고 진단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은 인허가와 인증, 임상시험, 법률 검토에 필요한 비용과 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진출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정책은 개별 기업의 자력 확대보다, 공공기관이 정보를 수집·분석해 제공하고, 전문가 자문과 현장 연계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향후 보건산업 글로벌 진출의 성패는 몇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우선, 미국·EU·중국 등 주요 시장별 규제 차이를 빠르게 읽어내는 분석 역량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다음으로 개발 단계부터 해외 인허가를 염두에 둔 임상 설계와 품질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 현지 의료기관·기업과의 공동연구, 전시회·학회 기반 네트워크, 투자·금융 지원까지 맞물려야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글로벌 진출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정책 인프라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과제다.
전문가들은 "보건산업의 해외 진출은 이제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지속적으로 들어가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면서 "제약바이오, 의료, 의료기기 산업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정책도 수출지원과 규제개혁, 실증 인프라, 인력 양성을 묶은 통합 전략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