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본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도수치료를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하는 '관리급여'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자 의료계 반발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실손보험 손해율 관리와 비급여 통제를 이유로 지나치게 낮은 수가를 강제할 경우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등 비수술 재활치료 분야가 사실상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도수치료를 단순 비급여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정부 정책이 결국 환자의 치료 선택권과 의료기관의 지속가능성, 숙련 물리치료 인력 유지 기반까지 동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대한의사협회는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관행수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도수치료,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주제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에는 김택우 의협 회장과 이태연 보험부회장을 비롯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도수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 진료과 의사회 임원진이 대거 참석해 "일방적 정책 강행을 즉각 중단하고 의료계와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늬만 급여화, 관리급여 들어가는 순간 퇴출 수순"
의료계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대목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가 칼질'이다. 현재 의료현장에서 형성된 도수치료의 관행수가는 평균 10만원 선이지만, 정부가 관리급여 명목으로 책정하려는 수가는 4만원에서 4만3천원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본인부담률을 95%라는 기형적인 구조로 설정해 사실상 환자의 금전적 부담은 줄어들지 않으면서 의료기관의 수익만 반토막 내는 구조라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이태연 보험부회장은 "반토막 난 수가 폭풍은 이미 일선 병원과 물리치료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보험부회장은 직접 시뮬레이션 자료를 제시하며 "수가가 4만원대로 묶이면 병원은 임대료는커녕 물리치료사들의 기본급과 인센티브조차 감당할 수 없어 연간 1억원 이상의 적자를 떠안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급여화 소식이 전해진 작년 말부터 직업적 가치 훼손과 고용 불안을 느낀 물리치료사들이 병원을 떠나는 등 구인·구직 시장의 혼란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초 산재보험이 10년 만에 도수치료 수가를 현실화하며 6만8천원으로 상향 조정했음에도, 건강보험이 이보다 훨씬 낮은 4만원대를 고집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최승규 회장도 "의료현장에서는 사실상 퇴출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직격했다.
최 회장은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 치료가 관리급여로 편입되면 현실과 맞지 않는 비용 구조 때문에 병원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직원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를 고려하면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정말 도수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도수치료를 불필요한 의료행위처럼 이야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도수치료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오랜 역사와 학문적 체계를 가진 치료"라며 "미국에는 의사와 유사한 수준으로 인정받는 오스테오패스(Doctor of Osteopathy), 카이로프랙틱(DC) 분야도 존재할 만큼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된 치료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또 "정부가 의료적 접근이 아닌 경제 논리만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은 매우 위험하다"며 "결국 민간보험 중심 의료체계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실손보험사만 이익"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장용호 수석부회장 역시 "도수치료는 약물 부작용이 부담스럽거나 주사 치료를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치료 수단"이라며 "3만~4만원 수준 수가로 정상적 치료를 하라는 것은 현실을 완전히 외면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장 부회장은 "이번 정책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집단은 결국 사적 실손보험사"라며 "환자 치료 접근성을 제한하면서 보험사의 손해율만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이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를 위해 수십 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의사와 물리치료사, 그리고 꼭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라며 "정부 정책으로 인해 환자들이 양질의 치료를 선택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분명 누군가는 이번 정책의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잉 문제 인정하지만 해법은 적정 수가"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김인종 수석부회장은 일부 과잉 비급여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계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근골격계 질환과 수술 후 재활 치료 과정에서 도수치료는 환자의 기능 회복과 재발 방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사회적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분명한 치료"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관리급여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우선 현실적인 수가 인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료계 역시 일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만큼 적정 수가 체계가 마련된다면 자정작용과 정부 지침 협조도 가능하다"며 "지금처럼 지나치게 낮은 수가로 통제하려 하면 도수치료의 순기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리치료사들 현장 떠난다"… 실제 인력 이탈 현실화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미 현장에서 물리치료 인력 이탈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평균 10만원 수준인 도수치료 비용이 관리급여 적용 시 4만원 안팎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음을 비판하며 "30~40분 이상 전문 수기 치료를 이런 수가로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보험부회장은 "도수치료 급여화 논의 이후 실제 숙련 물리치료사들이 직업 전망에 대한 불안으로 현장을 떠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10년 이상 근무한 물리치료사가 미래 가치 훼손을 이유로 업계를 떠난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병원 경영 측면의 우려도 이어졌다. 의료계는 물리치료실이 병원 내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과 많은 인력 운영비가 필요한 영역인데, 현재 논의되는 관리급여 수가로는 임대료와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횟수 제한이 더 문제… 환자 치료 막힐 것"
대한정형외과의사회 김완호 회장은 관리급여 정책의 또 다른 문제로 '치료 횟수 제한'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노령 환자나 만성 통증 환자들이 연간 10~20회 치료만으로 충분히 회복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며 "의사가 추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제도상 더 치료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일부 불법적·과잉 도수치료 문제는 의료계도 자정해야 하지만, 일부 사례를 이유로 필요한 치료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 김택우 회장은 "관리급여는 정상적 급여 체계라고 보기 어려운 비정상적 정책"이라며 "의료현장의 혼란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과 의사회와 함께 끝까지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의료 정책은 단순한 재정 절감이나 행정 편의만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의료현장의 실제 구조와 환자 치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협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