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중에서도 가장 흔한 췌장관선암은 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많고 기존 치료에 대한 반응이 낮아 5년 생존율이 약 13%에 그친다. 특히 췌장암과 같은 고형암에서는 섬유화된 종양 미세환경이 면역세포 기능을 억제해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면역 억제 환경에서도 항암 효과를 유지하는 면역세포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전은성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장미희 박사, 아주대학교 분자과학기술학과 박대찬 교수 공동 연구팀은 면역세포 접근을 막는 형질전환증식인자(TGF-β) 신호를 차단하고 암세포를 표적 공격하는 키메릭항원수용체 자연살해세포(CAR-NK 세포)를 개발했고 췌장암에서 유래한 오가노이드 모델과 동물 실험을 통해 항암 효과를 입증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유전자 제거와 삽입을 동시에 수행하는 단일 공정 유전자 편집 기술로 CAR-NK 세포를 개발해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이고 대량 생산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기술은 향후 췌장암뿐만 아니라 면역 치료가 어려웠던 고형암 치료 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살해세포(NK 세포)는 선천 면역계를 담당하는 주요 면역세포로 별도의 항원 인식 과정 없이도 암세포나 손상된 세포를 직접 제거할 수 있다. 특히 키메릭항원수용체를 장착한 CAR-NK 세포는 기존 면역 치료에 비해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과 같은 부작용 위험이 낮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차세대 면역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췌장암과 같은 고형암에서는 종양미세환경에 존재하는 형질전환증식인자(TGF-β)가 NK 세포의 기능을 강하게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세포독성과 활성 수용체 발현을 감소시키고 세포의 에너지 대사까지 저하시켜 면역세포의 전반적인 항암 능력을 떨어뜨린다.
기존 CAR-NK 치료는 이러한 환경에서 지속성과 기능 유지에 한계를 보였다. 또한 유전자 제거와 삽입을 각각 수행해야 하는 복잡한 제조 공정 역시 상용화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크리스퍼 카스9(CRISPR/Cas9) 기반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해 NK 세포에서 TGF-β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를 제거하는 동시에 췌장암 표적 단백질인 메소텔린(mesothelin)을 인식하는 키메라항원수용체를 삽입했다.
이때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전기 천공 방식으로 유전자 제거와 삽입을 단일 공정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을 확립해 제작 효율과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유전자 편집 과정에서 염증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약물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을 사용해 유전자 삽입 효율을 높이고 세포 기능을 강화했다.
새롭게 개발된 CAR-NK 세포는 암세포 사멸 효과가 강화됐다. 특히 덱사메타손을 병용한 조건에서는 세포 증식 능력과 주요 활성 수용체 발현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포의 에너지 대사 활성화가 확인되면서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고 장기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실제 췌장암 환자의 종양 특성을 반영한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해 CAR-NK 세포의 치료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CAR-NK 세포는 TGF-β가 존재하는 면역억제 환경에서도 암세포 사멸률이 55.4%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덱사메타손을 병용했을 때 68.3%까지 증가했다.
항암 효과는 동물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췌장관선암 이식 모델에서 CAR-NK 세포를 투여한 결과 종양 성장이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특히 덱사메타손을 병용한 경우 가장 강한 항암 효과가 나타났다.
전은성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교수는 "이번 연구에선 췌장암 환자 종양 조직 기반의 오가노이드 모델에서 CAR-NK 세포 치료제에 대한 다양한 효능 평가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실제 고형암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장미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박사는 "이번에 개발한 CAR-NK 세포는 면역억제 저항성과 종양 특이성을 갖고 있어 종양 미세환경에서도 암세포를 표적 공격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췌장암뿐 아니라 고형암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대학기초연구소지원사업(G-LAMP)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의학연구 분야에서 저명한 국제 학술지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피인용지수 13.3)'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