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의사들이 지역의사제 논의와 관련해 단순한 인력 배치 중심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중보건의사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28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6년 보건의료정책 공동기획세미나'에 참석해 "지역의사제 논의는 지난 50년간 운영된 공중보건의사 제도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는 '정책의 답은 현장에 있다: 지역의료의 위기와 지역의사제'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우병준 대공협 정책이사는 패널토론을 통해 현재 논의 중인 지역의료 정책이 단순 의무복무 인력 공급 방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우 정책이사는 "우리나라는 이미 1970년대부터 공중보건의사 제도를 통해 사실상의 지역의사제를 운영해 왔다"며 "지역별 필요 인력과 전공을 지정하고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수행하는 구조는 현재 논의되는 지역의사제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50년간 매년 2000~3000명의 공보의가 지역 보건의료기관에서 근무해 왔지만 오늘날 지역의료 위기와 공보의 감소는 해당 제도가 기대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 경험에 대한 평가 없이 지역의사제를 도입할 경우, 결국 복무기간만 늘어난 '장기 공보의' 양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제도의 전신에 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공협이 현직 공중보건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응답자의 78.5%는 지역의사제 및 공공의료사관학교 정책이 지역의료 공백 해소에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주요 이유로는 ▲열악한 근무지 기피 지속(78.0%) ▲복무 이후 지역 정착 유인 부족(76.3%) ▲지방-도시 의료 격차 심화 우려(53.8%) ▲지역 의료기관 신뢰 부족(40.3%) 등이 꼽혔다.
우 정책이사는 "공보의 제도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강제성 기반 인력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의료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단순 인력 공급은 지역 공공의료 전문 인력 양성이나 장기 정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지역의료 문제는 인력 부족이 아니라 의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열악한 진료 환경, 공공의료 방향 설정 오류, 환자 신뢰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근본적 개선 없이 의사만 추가 배치하는 방식은 제한된 역할 속에서 인력을 반복적으로 소모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 정책이사는 또 "의사 부족을 이유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간호사·방사선사·환자까지 '지역' 개념으로 묶는 정책이 확장될 수 있다"며 행정편의적 접근의 위험성도 지적했다.
박재일 대공협 회장 역시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도 공보의가 전문의 지원 없이 지역 응급실 당직을 맡는 등 역량을 초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제재까지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문의가 지역에 남지 못하는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값싼 의무복무 인력으로 의료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회장은 "지역의료는 의사를 배치한다고 자동으로 살아나지 않는다"며 "국민은 여전히 지역 국립대병원의 중증 진료 역량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 이용의 핵심 조건으로 전문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가가 책임 있는 투자와 운영을 통해 환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어떤 인력 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권역 내 의료 이용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지역의료 정책은 현장에서 확인된 실패와 한계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대공협은 공보의 제도와 지역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