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러닝, 느리게 달리기로 봄을 맞이하자

[의학칼럼] 이인화 서울인화스포츠마취통증의학과 원장

보건신문 2026.02.25 12:26:42

대한민국은 지금 '달리기' 열풍이다. 새벽 강변이나 퇴근길 도심 곳곳에서 형광색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이 열풍의 중심축이 묘하게 이동하고 있다. 기록을 경신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몰아붙이는 '질주' 대신, 옆 사람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뛰는 '슬로우 러닝(Slow Running)'이 새로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슬로우 러닝, 혹은 '슬로우 조깅'이라 불리는 이 운동의 핵심은 '니코니코(Niko-Niko, 싱글벙글) 페이스'에 있다. 일본의 스포츠 생리학자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가 고안한 이 방식은 보폭을 10~20cm 정도로 짧게 유지하며 초당 3걸음 정도의 리듬으로 천천히 달리는 것이다.

이인화 서울인화스포츠마취통증의학과 원장

역설적이게도 이 '느림'은 효율성 면에서 '빠름'을 압도한다. 일반적인 걷기가 시속 4~5km 수준에서 에너지 소모가 제한적인 반면, 같은 속도라도 러닝의 메커니즘을 사용하면 에너지 소모량은 걷기의 약 2배에 달한다. 특히 슬로우 러닝은 젖산이 쌓이지 않는 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낮고,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여 뱃살 연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슬로우 러닝을 즐기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기록을 포기하니 비로소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숨이 차지 않으니 주변 사람과 담소를 나눌 수 있고, 흐르는 땀은 고통의 산물이 아닌 기분 좋은 자극이 된다. 이는 과도한 경쟁과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운동이 단순한 체력 단련을 넘어, 심리적 치유와 마음 챙김의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의학적 관점에서도 슬로우 러닝의 부상은 반갑다. 발뒤꿈치가 아닌 발 앞부분(forefoot)이나 중간(midfoot)으로 부드럽게 착지하는 이 방식은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을 기존 러닝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준다. 이는 과체중이나 고령자, 혹은 과거 부상 경험으로 인해 달리기를 주저했던 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운동'이라는 희망을 준다.

또한, 꾸준한 중강도 유산소 운동은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BDNF)의 분비를 촉진해 인지 기능을 개선하고 우울감을 완화한다. 결국 슬로우 러닝은 단순한 운동 트렌드를 넘어, 천천히 건강하게 늙어가는 '저속노화(Slow-aging)' 라이프스타일의 핵심 퍼즐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긴 여정이다. 공부도, 일도, 운동도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보폭을 좁히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만의 속도를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치지 않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남들의 페이스에 맞춘 질주 대신, 스스로 미소 지을 수 있는 느린 달리기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느린 발걸음 속에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진정한 건강과 행복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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