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이 도입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제도의 핵심 목표였던 '의약품 오남용 억제', 특히 항생제 사용 감소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장기간 축적된 국내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약분업 정책 효과를 재평가한 결과, 정책 목표 달성과 정책 영향 모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최근 '의약분업 재평가 연구: 정책 효과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의약분업 시행 이후 25년간의 항생제 사용과 처방 변화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정책 효과 평가 모형인 '목표달성 평가모형'을 적용해, 의약분업이 실제로 정책 목표를 달성했는지, 또 정책 개입 자체가 결과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동시에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약분업은 2000년 7월 1일 시행된 제도로,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판매를 분리함으로써 의약품 오·남용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제도 도입 전부터 의료계와 정부, 관련 직능 간의 의견 대립이 컸고, 시행 이후에도 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의약분업의 평가 정책 목표를 '의약품 오남용 억제'로 설정하고, 이를 측정하기 위한 핵심 지표로 '항생제 처방 감소'를 선정했다. 정책 목표 달성 여부는 OECD 전체 상병 항생제 사용량(DID) 평균과 DID 20 이하라는 절대 기준을 적용해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분석 기간 동안 OECD 평균보다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분업 시행 직후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이후 다시 증가해 2016년에는 의약분업 이전인 1996년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항생제 사용량이 사실상 의약분업 시행 이전 수준으로 회귀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21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DID 2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어, 정책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책 개입 효과도 '없음'… 감소 추세는 다른 요인
정책 영향 분석에서도 결과는 동일했다. 연구진은 2000년 3분기를 정책 개입 시점으로 설정하고, 전체 상병 항생제 처방률과 급성 상기도 감염 항생제 처방률을 종별로 분석했다. 분석에는 ARIMA-개입 분석과 SARIMAX 모형이 활용됐으며, 의사 수 변화, 독감 유행 강도, 코로나19 유행 등 외부 변수도 함께 반영됐다.
분석 결과, 항생제 처방률은 장기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이 변화가 '의약분업'이라는 정책 개입에 의해 유발됐다고 볼 만한 통계적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처방 감소가 나타난 시기와 규모 모두에서 의약분업의 즉시 효과, 단기 효과, 장기 효과가 유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표도, 영향도 없다… 정책 재설계 필요"
연구원은 이번 연구 결과를 종합해 의약분업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책 개입으로 인한 명확한 영향도 확인되지 않은 제도라고 결론지었다. 항생제 처방 감소라는 핵심 목표에서 실패했고, 의약분업 자체가 처방 행태 변화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의약분업은 오랜 기간 유지돼 온 제도이지만, 정책 효과에 대한 실증적 재평가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는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 효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약품 오남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 유지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되며,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 수단에 대한 재설계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