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신약 경쟁' 넘어 '산업 전쟁'으로… K-바이오 설계 혁신 시급

릴리 주도 '산업 모델'이 글로벌 표준으로… 경구 제형·공급망·플랫폼 전략이 승부처

홍유식 기자 2026.02.03 10:20:58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단순한 신약 개발 경쟁을 넘어 생산 체계와 유통망, 플랫폼 경쟁력을 아우르는 거대 산업화 단계에 진입했다.

최근 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300억 달러 규모인 비만치료제(AOM) 시장은 2028년 700억 달러를 거쳐 2030년 이후 1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주도권은 '최초 개발'에 성공한 노보 노디스크에서 '산업 모델'을 완성한 일라이 릴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릴리는 주사제인 '잽바운드'로만 2025년 12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릴리가 시장의 기준점을 바꾼 핵심은 단순히 살을 빼는 약을 만든 것이 아니라, 비만치료제를 회사의 핵심 매출 축으로 변모시키고 경구 제형과 공급망 확장을 통해 '대형 산업 시장'으로 전환했다는 점에 있다.

보고서는 K-바이오가 주목해야 할 '넥스트 릴리'의 조건으로 ▲경구·저분자 제형 전략 ▲대량 생산이 가능한 원가 구조 ▲중단율을 관리하는 임상 설계 ▲적응증 확장이 가능한 플랫폼 전략을 제시했다.

첫 번째 조건으로 제형과 공급망을 포함한 구조적 설계를 제시했다. 기존 비만치료제 경쟁이 체중 감량 효과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대량 생산과 장기 복용을 감당할 수 있는 제형 전략이 시장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경구용 비만치료제는 주사제 대비 생산 효율성이 높고, 냉장 유통·주사 교육·의료 폐기물 처리 부담이 적어 시장 확장성이 크다. 릴리가 저분자 기반 경구 GLP-1 치료제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전면에 내세운 배경도 여기에 있다. 리포트는 경구 제형이 상용화될 경우, 중증 환자 중심이던 비만치료제 시장이 초기·경증·예방 단계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조건은 '임상 속도'가 아니라 '임상 설계'를 꼽았다. 비만치료제 분야에서 임상 전략의 기준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기술 도입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지표는 단기 체중 감량 폭이 아니라 복용 지속성이다. 실제 GLP-1 계열 치료제는 임상 및 실제 처방 환경에서 1년 이내 중단율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빅파마들은 체중 감량 수치보다 내약성, 용량 증량 전략, 유지요법(maintenance therapy) 가능성을 핵심 평가 요소로 삼고 있다. 리포트는 K-바이오가 단일 임상 결과만으로는 기술이전에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에 진입했으며, 장기 복용을 전제로 한 임상 설계가 필수 조건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만치료제가 더 이상 단일 신약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비만치료제를 플랫폼형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하나의 약물이 비만을 넘어 당뇨, 심혈관질환, 지방간, 신장질환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여부를 핵심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릴리가 단일 비만치료제를 기반으로 심혈관·대사질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는 전략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리포트는 K-바이오 역시 초기 개발 단계부터 적응증 확장 가능성과 포트폴리오 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K-바이오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임상 성공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가 요구하는 차세대 산업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단기적인 기술이전 성과에 매몰되기보다, 초기 개발 단계부터 대량 생산 체계와 적응증 확장성을 고려한 '산업형 파이프라인'을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고서는 K-바이오가 더 이상 빠른 임상 진입이나 단기 기술이전 성과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시장은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가 아닌 '누가 산업으로 완성했는가'를 묻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의 설계자가 되기 위한 산업형 파이프라인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