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정해놓고 숫자 맞췄다… 과학 아닌 정치적 추계"

의료정책연구원, 정부 의사인력 추계 정면 반박… "ARIMA·진료비 대리지표·AI 생산성 왜곡"

김아름 기자 2026.01.15 15:25:57

정부가 발표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보건복지부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배포한 '의사인력 수급추계 관련 설명자료'에 대해 "과학적 추계라 보기 어렵다"며 조목조목 문제점을 제기했다.

의정연은 "이번 추계는 의사 부족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방법론과 변수를 이에 맞게 끼워 맞춘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 13일 열린 '정부 의사인력 수급추계의 문제점과 대안' 세미나 이후 공식 입장문을 통해, 추계위원회가 사용한 핵심 모형과 데이터 선택, 생산성 가정 전반이 통계적·정책적으로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이 가장 먼저 문제 삼은 부분은 의료이용량 추계에 사용된 ARIMA 모형이다. ARIMA는 과거 시계열 패턴을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통계 기법으로, 구조적 변화가 큰 장기 추계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의정연은 "ARIMA 모형은 과거 의료이용 증가 추세가 미래에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 인구 감소나 의료기술 발전, 정책 개입과 같은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며 "선진국에서도 의사인력 수급추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추계위원회 회의자료에 따르면 ARIMA 방식으로 산출된 결과에서는 2050년 기준 60~64세 남성 1인이 연간 34~35일 외래 진료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외래만 계산한 수치이며 입원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며 "미래 의료이용이 사실상 무한대로 증가한다는 비상식적 가정"이라고 비판했다.

"2000년부터 데이터 고집… 구조적 변화 외면"

데이터 사용 기간 역시 핵심 쟁점이다. 추계위원회는 통계적 신뢰도를 이유로 2000년부터 2024년까지의 의료이용 데이터를 활용했지만,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를 "구조적 변화를 은폐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의료정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4~2010년 입원일수 연평균 증가율은 11.8%에 달했지만, 2010~2023년에는 1.9%로 급격히 둔화됐다.

이를 두고 의정연은 "2010년을 기점으로 의료이용 패턴이 명확히 달라졌음에도 이를 구분하지 않고 단일 추세로 묶었다"며 "민감도 분석조차 수행하지 않은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 업무량 산출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추계위원회는 진료비를 의사의 노동투입량을 대리하는 지표로 사용했지만, 진료비는 병원의 매출일 뿐 의사의 노동시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MRI·CT 등 고가 장비 검사 비용과 재료비가 의사의 노동으로 계산되면서, 실제 진료 시간보다 검사 비용이 더 큰 업무량으로 반영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결국 의정연은 "돈을 땀으로 치환한 셈"이라며 "필요 의사 수를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했다.

AI 생산성, '반영한 듯 안 한' 왜곡 가정

상대가치점수(RVU)를 활용한 노동투입량 보정이 가능함에도, 추계위원회가 자료 확보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의사 생산성 향상과 관련된 가정 역시 논란의 중심이다. 추계위원회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10년간 6%로 적용했지만, 이는 의사 생산성이 아니라 보건의료 전체 인력 평균치라는 것. 

국제 연구에서는 AI 도입으로 의사의 생산성이 30~50%까지 향상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추계위원회는 해당 수치를 15년으로 나눠 연간 0.04% 수준으로 희석해 반영했다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원의 주장이다.

더 큰 문제는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의사의 근무일수 감소로 상쇄시킨 점이다. 의정연은 "근로시간 단축은 제도화되지도 않은 가정"이라며 "국민 의료 접근성 저하 가능성에 대한 고려조차 없었다"고 비판했다.

의사 공급 과잉 가능성을 내포한 조성법에 대해 추계위원회가 시나리오 적용을 배제한 점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결정론적 모형에도 시나리오 분석은 가능하다"며 "보험·재정 분야에서는 이미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함께 AI 생산성 향상과 의료정책 변화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의사 과잉' 결론이 명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원천 차단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밝혔다. 

"FTE 자료 있다… 정부가 외면"

전일제 환산(FTE) 방식 적용이 불가능했다는 추계위원회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의료정책연구원의 설명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이미 2016년부터 의사 근무시간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심평원의 상대가치점수 자료에도 의사 투입 시간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의정연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자료를 활용했다면 충분히 정교한 추계가 가능했다"며 "정확한 데이터가 '의사 부족' 결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외면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립적 추계체계 구축해야"의료정책연구원은 끝으로 정부에 △명확한 의료정책 목표 설정 △추계위원회 전문성·독립성 강화 △임상 현장 전문가 확대 △수급추계센터의 민간 위탁을 통한 독립성 확보 등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의사인력 수급추계는 과학적 예측이라기보다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가깝다"며 "의사인력 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와 현장, 그리고 국민 불편을 기준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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