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세계 최대 규모 유방암 코호트 완성

유전체 기반 개인 맞춤 치료전략 수립에 도움 기대

김아름 기자 2025.12.04 09:28:12

삼성서울병원(원장 박승우)이 유전체전장분석(WGS)을 활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유방암 코호트를 완성했다고 4일 밝혔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유방암센터 혈액종양내과 박연희·유방외과 유종한·영상의학과 이정민 교수 연구팀은 바이오인포매틱스 전문 기업 이노크라스(Inocras) 주영석·김률 박사와 함께 네이처(Nature, IF= 48.5) 최근호에 유방암 코호트 '큐브릭스(CUBRICS, Clinical Utility of Breast Cancer Research by Inocras, CMC, and SMC)'의 완성 소식을 발표했다.

큐브릭스 코호트는 2012년부터 2023년 사이 10년에 걸쳐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성모병원에서 등록한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 1364명의 '전장유전체분석(WGS, whole-genome sequencing)' 결과에 이들의 진료정보를 통합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온 관련 코호트 중 가장 광범위한 데이터를 모았다.

삼성서울병원의 연구진 역량과 전문성, 연구 자원 및 경험 등이 집약되어 뒷받침된 결과다.

주영석 박사는 "대규모 임상 코호트가 전장유전체 시퀀싱 및 세계적 수준의 바이오인포매틱스와 결합될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며 "캔서비전을 통해 타겟 패널로는 확인할 수 없는 유전체 인사이트를 발굴할 수 있었으며, 일상적인 암 치료에서 WGS 사용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 경향을 보면 데이터 품질이 연구 성과의 수준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삼성서울병원과 이노크라스의 협력모델이 미래 산업의 자원인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암을 일으킨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돌연변이 시그니처', 특정 항암제에 대한 반응성을 예측하는 '상동 재조합 결핍상태(HRD, homologoud recombination deficiency)', 면역항암제 효과를 예측하는 '종양변이부담(TMB, tumor mutational burden)', 암의 복잡성과 적응력을 보여주는 '종양 이질성 점수(MATH, mutant-allele tumor heterogeneity)'에 대한 분석이 포함됐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유방암 발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규명할 중요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게다가 큐브릭스는 한국인 환자 데이터를 활용한 덕분에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활용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연구팀은 "서양 중심의 유방암 연구 풍토에서 한국인과 같은 아시아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법, 신약 개발 과정에서 소외되기 쉽다"면서 "한국인의 특징을 잘 살리고, 유전체에 기반한 보다 정밀하고 정교한 연구가 가능한 코호트를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아시아 환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큐브릭스를 통해 후천적 돌연변이 약 1093만 개를 찾아냈다.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발병에 영향을 준 핵심 유전자는 모두 41개로, 이 가운데 4개(BCL11B, RREB1, RAF1, SPECC1 )는 이번에 처음으로 보고됐다고 한다.

연구팀은 "새롭게 발견된 유전자들은 유방암을 진단하는 새로운 바이오마커가 되거나, 이 유전자들의 기능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항암제 개발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큐브릭스 코호트를 바탕으로 암세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정량적 지표로 환산할 수 있게 된 것도 성과로 꼽혔다.

암 관련 대표 유전자인 TP53에 변이가 생기면 DNA 손상이 발생해도 이를 수리하지 못하게 된다. 그만큼 암 덩어리 내에도 각기 다른 손상 정도를 지닌 암세포가 많아져 성격도 제각각으로 바뀐다. 암치료가 거듭됨에 따라 더욱 어려워지는 이유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분석해 종양의 비균질성 (tumor heterogeneity)를 반영한 수학적 모델(MATH; Mutant-allele tumor heterogeneity)로 풀어 예후를 가늠하는 지표로 제시했다.

MATH 점수가 중앙값(40점) 보다 높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사망위험이 1.66배 높았고, 특히 HER-2양성 유방암 환자들은 항-HER2 치료에서 무진행생존율이 2.80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 관련 다른 코호트(METABRIC; Molecular Taxonomy of Breast Cancer International Consortium)에 대입하여 검증했을 때도 유효한 것으로 밝혀져 같은 유방암 환자라도 보다 정교하게 치료 계획을 수립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코호트에서 밝힌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APOBEC3A/3B 돌연변이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비율이 31.8%로, 유럽 8.5%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점이다.

APOBEC3A/3B 유전자 변이는 다른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촉진해 암 발생이 용이하도록 한다. 아시아 유방암 환자의 출발선이 서양 환자들과 처음부터 달랐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적 특징이 유전자 수준에서 드러남으로써 복잡한 한국인의 유방암의 발병 메커니즘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임상에서 진단되기 훨씬 이전에 유방암의 중요한 돌연변이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이번 연구로 입증했다.

유방암이 어느 특정 순간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암세포가 씨앗을 내린 시점에 암의 성격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단계가 있다는 추정이다. 실제로 암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세포단계에서 유전자 복제 이상(long-segmental copy number amplifications)이 발생하면서 암이 시작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유방암 발병을 부추기는 여러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결국 유방암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치료가 비교적 양호하다는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재발되고, 결국 치료가 어려운 예로 이어지는 것을 이러한 내용으로 어느 정도 설명을 할 수 있다"며 "이러한 경우 유방암은 결국 긴 호흡으로 전후 맥락을 두루 봐야 치료할 수 있는 암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널리 쓰이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방식이 가진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도 이번 코호트가 거둔 성과 중 하나로 연구팀은 꼽았다.

NGS는 특정 유전자 그룹을 모아 확인하는 패널 검사인 데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 가운데 하나의 염기에서 발생한 돌연변이(Point Mutation)를 찾는데 집중하다 보니 암의 전체적인 변화나 복잡한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만 특정 순간에 보아선 계절에 따라 바뀌는 숲의 모습을 모두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구팀은 "유방암은 아형도 치료 과정에서 바뀔 수 있고, 같은 아형이라도 치료에 대한 저항성이 다르다"면서 "큐브릭스 코호트에서는 돌연변이 시그니처를 통하여 같은 아형이라도 치료에 대한 저항성은 다를 수 있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연구팀은 코호트에서 유방암 치료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지표로 상동재조합결핍(HRD)을 발굴해 제시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봤다. 연구팀은 HRD가 유방암의 무진행 생존에 영향을 주는 주요 인자로 꼽았다. HRD가 있는 여성호르몬수용체 양성의 전이성 유방암은 1차 치료(항호르몬치료 및 CDK4/6억제제)에서 반응하지 않고 병이 진행할 위험이 14.7배 더 높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HRD 등의 치료적 접근과 매우 밀접한 변이를 포괄적으로 동시에 깊이 있게 규명해 내 유방암의 정밀의학 치료에 한걸음 더 근접할 수 있는 구조적 접근이 가능해졌다"면서 "근래 보기 드문 성과"로 평가했다.

큐브릭스는 임상 정보가 모두 달린 최대 규모의 한국인 유방암 유전체 데이터로, 이를 통해 향후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글로벌 유방암 중개 연구에서 우리나라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왔다.

이번 연구를 이끈 박연희 교수는 "현재 통용되는 기준만으로는 유방암의 특징뿐만 아니라 환자마다 치료 결과가 다른 점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전장유전체분석과 임상 데이터를 결합한 이번 코호트가 유방암의 기전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유방암 연구와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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