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국회가 추진 중인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장의 실제 상황을 모르는 탁상 개정"이라며 강하게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수용능력 확인 조항 삭제, 전문의 2인 상주 의무화 등 다수 조항이 도입될 경우 응급의료체계 전반에 병목과 공백이 발생해 오히려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응급의학회(회장 이삼범)는 1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최근 28명의 국회의원이 공동 발의한 응급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현장 운영과 동떨어진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학회가 가장 우려한 부분은 '수용 능력 확인' 절차를 삭제하고 119구급대나 상황관리센터가 이송 병원을 직권 선정하도록 한 제48조의2 개정안이다.
응급의학회는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송 병원을 구급대가 일방적으로 선택하면 특정 병원 외부에 구급차가 줄지어 대기하는 병목 현상이 불가피하다"며 "이 경우 지역 내 새로운 응급환자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워져 구급 공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급성심근경색증 등 질환은 '가까운 병원'이 아닌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일률적인 이송 규정은 오히려 환자 생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제48조의3에서 응급환자 인계 시 의료진 간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로 바꾼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학회는 "응급환자 인수인계는 응급의료의 기본 중 기본"이라며 "이미 119구급대와 병원 간 대면 인계와 구급활동일지 전달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법적으로 약화시키면 응급의료체계의 신뢰성과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제32조 개정안이 제시한 전문의 2인 1조 상주, 질환군별 당직체계 의무화는 인력난을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응급의학회는 "전국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약 2800명으로 이미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 조항을 충족시키려면 필수의료 타과 전문의까지 당직에 투입해야 하고, 결국 외래·수술·입원 등 다른 진료 영역에 인력 공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처럼 환자량이 많은 기관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가 되고, 중소병원은 현실적으로 제도 자체를 이행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학회는 개정안에서 제시한 '이송'과 '전원'의 정의가 응급의학적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응급환자 이송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현장 처치 △적정 병원 선정 △이송 중 모니터링 △환자 인계 전문의에 의한 의학적 지도 등이 포함된 의료행위 전체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학회는 "이송을 '환자를 발생 장소에서 병원으로 옮기는 행위'로만 정의하면 응급의료체계의 수준은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원 역시 단순한 '기관 간 이관'이 아니라 복잡한 의학적 판단과 임상 경험이 필요한 진료 과정이라며, 법률로 획일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및 민사상 배상책임 상한을 명시한 제63조 개정안에 대해서는 환영 뜻을 밝혔다.
학회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전공의를 포함한 모든 응급의료 종사자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위축되지 않고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형사처벌 면제는 필요적 규정으로 적극 찬성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권과 정부뿐 아니라 의료계 역시 응급의료 분야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최상의 응급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