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알고 마시면 더 맛있습니다

'귀족의 보양식'에서 '국민 식품'으로…역사 속 우유의 변화

이원식 기자 2025.06.12 16:22:52

문헌상 우유의 존재가 처음 등장한 기록은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유는 누가, 언제부터 마셨을까? 우유는 가장 익숙한 식품이지만 우유에 대한 문화와 과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 우유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짚어보면 '우유의 가치'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우유는 원래 귀족의 식품이었다. 지금이야 마트나 편의점 어디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인류 역사 속에서 우유는 오랜 시간 권력과 계급, 종교와 의학의 영역에 속한 '특권의 식품'이었다.

그 기원은 약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와 앗시리아 시대 벽화에는 암소의 젖을 짜는 장면이 등장하며, 성경에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우유는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풍요와 생명의 상징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우유와 치즈는 귀족과 군인의 식량이자 의학적 회복식으로 쓰였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우유를 '가장 완전한 식품'이라 칭하며 그 영양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 소를 가축화한 역사는 단군조선 시기로 추정된다. 문헌상 우유의 존재가 처음 등장한 기록은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다.

1285년경 일연이 지은 이 책의 '어산불영조(魚山佛影條)' 편에는 "용이 소를 먹이는 사람이 되어 왕에게 유락(乳酪)을 바쳤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신령한 존재인 용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젖을 짜고, 그 우유를 왕에게 진상한 장면으로, 우유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귀한 보양식이자 상징적 가치를 지닌 식품이었음을 보여준다.

약 90년 뒤인 고려 우왕 시기에는 왕실 전용 우유 목장인 '유우소(乳牛所)'가 설치돼 상류층에만 제한적으로 공급됐다. 조선 숙종과 순조 시기에도 우유는 왕이나 병자를 위한 보양식으로만 사용됐다. 당시에는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낙죽(우유죽)' 형태 외에는 섭취가 금지될 정도였다.

이렇듯 귀족에게만 허락된 우유가 국내에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2년 프랑스인 쇼트(Short)가 홀스타인 젖소 11두를 들여오면서부터다. 이후 1960년대 들어 국내 우유 생산량이 늘고 학교 급식과 유업 산업화가 본격화되며, 우유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우유는 다시 '격'을 높이고 있다. 단백질 강화, 락토프리, 저지방, 무가당 등 기능적 가치는 물론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사회적 식품으로서의 역할과 무항생제·저탄소 인증 목장 확대, 종이팩 재활용 등 친환경 실천을 통해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주목받고 있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우유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한 누구나 인정하는 건강식품이자 5대 영양소인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을 포함해 114가지의 영양성분을 함유한 '가장 완전에 가까운 식품'"이라며 "특히 칼슘의 주요 공급원이자 생애 전 주기에 꼭 필요한 식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우유는 영양을 넘어 건강, 환경, 사회적 가치까지 아우르는 식품으로 인식돼야 하며, 이러한 흐름을 되짚어보는 것이 우유에 대한 인식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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