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아직도 동경대학을 좋아한다. 명치시대 서양문물을 본떠 제국대학으로 태어난 동경제국대학은 일본 엘리트들의 산실이었다. '아까몽(赤門, 동경대학을 이름)'을 거쳐야만 진짜 일본을 대표하는 엘리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철저한 도제교육의 원칙을 지켜온 동경대학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적폐가 쌓여갔다. 교수들 간에는 알력과 파벌이 생겨났다. 도제교육의 테두리 속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하지만, 일본 현지에선 알아주지 않아서 다시 동경대학 학위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중 의학부가 유독 심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병폐를 없애고자 힘썼지만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결과 동경대학 외에 새로운 시스템에 의한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종합대학 설립 필요성이 제기됐고 '쓰쿠바대학(筑波)'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와 비유해서 말한다면 서울대학교 말고 키스트나 카이스트를 만든 것과 비슷했다.
동경대학 부속병원도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일본 천왕이나 왕조 그리고 총리 같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만 동경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립학교인 게이오 대학이나 순천당 대학에서 치료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부조리를 꼬집은 '하얀거탑'이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경성제대출신과 동경대학 출신 교수들이 서로 파벌을 만들고 반목하는 경우가 흔했다. 의과대학의 경우에는 경성의전과 경성제대파가 원수같이 싸웠던 일도 있었다.
이런 파벌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수들의 몸가짐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학장이나 처장 그리고 총장을 지상 목표로 삼거나 더 나아가 장관 같은 요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한다. 교수들은 일생 연구와 교육에만 종사하는 고매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대학교수는 모름지기 학문연구와 교육에 몰두해야 한다. 그 이외는 모두 부수적인 일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정년할 때까지 일생을 보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밝히자면 너무도 많은 교수들이 본연의 학술연구와 교육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한눈을 팔았다. 보직이나 정부 요직에만 관심을 갖는 '사이비 교수'들이 유명교수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