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셨던 김수태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나보다 5년 선배였던 그를 처음으로 깊이 사귄 것은 존스홉킨스대학이었다. 아마도 1967년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하버드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존스홉킨스대학 국가보건기획과정을 수학하던 때였다. 대학원 학생들이 많은 기숙사에 가니 마침 김수태 선생이 옆방에 있었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해서 같이 백화점도 가고 기숙사 근처에 있는 해산물식당에도 갔다. 이 기숙사는 처음 미국에 가서 공부했던 미네소타대학과는 달리 밥은 식당에서 매 끼니마다 사먹어야 했다.
기숙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선생이 나를 초대했다. 그의 방에 가니 대학교수로서 김 선생과 같이 연구하는 일본 유학생과 대만에서 온 의사도 와 있었다. 전기곤로로 밥을 해서 일본 식료품가게에서 사온 장아찌로 저녁을 먹었다. 곤로 불에 지은 밥을 여럿이 나눠 먹으니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그의 방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보건관계 전문지에서 김 선생님이 친상을 당했다는 작은 기사를 보고 때늦은 문상을 위해 연구실에 들렀다. 임상교수 연구실이 다 그렇지만 작은 방에서 나에게 굳이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들었다. 옛날 생각을 해서 곤로에 밥을 해주나 했더니 이번에는 사과 한 개와 카스테라를 사오게 해서 같이 먹었다.
내가 담석증 진단을 받고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다. 같은 외과지만 이제는 학교를 떠나 두산그룹에서 큰일을 하고 있는 박용현 부교수가 수술을 맡았다. 김수태 선생은 내가 특별히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직접 수술실에 오셔서 마취 과정부터 돌봐주고 당시 외과과장 재량으로 수술비도 받지 않도록 배려해 줬다.
그 후 친해져서 전화도 자주하고 식사도 여러 번 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잘하는 교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생활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이 경영하던 전라도 광주의 외과병원에서 집도하고 매달 생활비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고 수술 잘하는 유명한 외과교수로 일생을 지냈지만 너무 고지식해서 크게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요새는 수술 잘하는 외과교수는 이름도 나고 생활도 넉넉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김수태 선생은 일생 성실하고 정직하게 청빈을 벗 삼아 살아오셨다. 요새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로 흐르는 느낌이 있지만 김수태 선생님은 참으로 훌륭한 선비요 의학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