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준 “너무 짜” 국내기준 “괜찮아”

김연주 기자 2005.06.01 00:00:00

국내 섭취기준 WHO기준치의 1.8배 / 국민건강 위해서라도 하향조정 시급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식습관 변화를 위해서라도 나트륨 섭취 기준을 하향 조정하라’
최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시판 중인 국내 유명 회사 라면들의 대부분에서 세계보건기구(WHO) 1일 섭취량(1,968mg) 기준을 상회하는 나트륨이 검출됐다고 발표하자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게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연합은 최근 3년 간 국내 판매순위 10위안에 든 라면 11개 제품의 나트륨 함량을 식약청 공인기관에 의뢰 분석한 결과 세계보건기구(WHO) 1일 섭취량 기준보다 높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중의 주요 라면 1개당 나트륨 평균 함량이 2,075mg으로 우리나라 나트륨 섭취 제한량 3,500mg의 60%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연합은 나트륨이 고혈압 관련 질환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내 나트륨 섭취 제한 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춰 낮추는 등 나트륨 섭취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공식품의 나트륨 함량 문제는 지난해에도 소비자시민모임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지난 해 7월 소시모는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스낵 과자류 한 봉지(100g)에 최고 710mg의 나트륨이 들어 있어 한 봉지를 먹으면 미국국립과학원이 정한 1일 나트륨 섭취기준량(1,500mg)의 3분의 1을 섭취하게 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라면이나 스낵 등에서 검출된 나트륨 양이 국내 기준치인 3,500mg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국제적 기준에만 맞추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 기준에 무조건 맞추라는 것은 서양식단을 무조건 따라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고 “라면의 경우 개인 식성에 따라 물로 염분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무리하게 국제 기준을 적용해 라면에 대한 불신만 부추기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식약청도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은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식습관을 고려해 지난 2002년 설정한 것”이라며 이와 관련 내부 회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 아동기 나트륨 과다섭취 심각
시민단체들은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이 지나치게 높은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WHO에 비해 무려 2배 가까이 높고 영국, 미국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보니 라면, 스낵 등 어린이나 성장기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 가공 식품의 나트륨 함량이 국제 기준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아동기의 식습관이 성인기까지 지속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기의 나트륨 과다 섭취는 성인이 되어서도 식품 선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경연합 관계자는 “이번에 조사한 라면의 나트륨 평균 함량(2,075mg)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식품 중 나트륨 함량 비교(국민의 건강 식단/1인분 기준)’에서 밝힌 김치찌개(1,355mg), 참치김치볶음(1,276mg), 된장찌개(855mg)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다”며 “나트륨은 짜게 먹는 우리 식생활 특성상 과잉 섭취의 우려가 크다. 여기에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의 섭취 증가로 나트륨 섭취량도 더욱 늘어나 평균 하루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섭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국내 나트륨 섭취 기준이 타당한 근거 없이 국민들의 식습관만 고려해 설정돼 있다는 점을 들어 정확한 근거를 통한 섭취 기준의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나트륨 과잉 섭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트륨의 가장 큰 섭취원이 되는 가공식품을 대상으로 영양표시를 의무화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에 대해서는 경고문구를 삽입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 업계, 저염라면 개발 등 대책 부심
농심,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관련 업계는 이번 조사 결과로 소비자들의 라면에 대한 불신이 심화돼 라면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업계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국내 기준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국제 기준을 적용하는 등 문제가 많지만 라면에 대한 불신감 확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공동의 대응 논리를 마련하는 한편 국내 기준치 보다 훨씬 낮은 저염 라면 개발이나 스프를 다 넣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등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저염 라면을 개발한다 해도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있다는 데 업계의 고민이 있다.

농심 관계자는 “당장 라면 소비가 줄어들지는 않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한다는 차원에서 저염 라면 개발에 대한 연구도 진행할 방침”이라며 “맛은 유지하되 나트륨 함량은 줄여야 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뚜기 최광명 홍보팀장도 “나트륨 함량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맛에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염 라면 개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면서 “소비자 테스트 등에서 맛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비로소 제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야쿠르트도 “상미감 때문에 나트륨을 줄이는 것은 당장 힘들지만 스프를 두 봉지로 나눠 넣어 소비자들 스스로 선택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식약청은 국내 성인 나트륨 섭취 기준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과 관련 가까운 시일내에 홈페이지를 통해 설명 자료를 공지할 방침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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