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약강국 도약위해 정부 지원·규제완화 절실

[창간 54주년 기획 1] 포스트 코로나와 제약바이오산업

장병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

코로나19는 경자년 절반이 지난 6월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포스트 코로나’를 내다보지만 정작 언제 극복할 수 있을지 전망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코로나에 제약바이오를 ‘해답’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를 종식의 열쇠도, 앞으로 빈번히 발생할 유사 감염병 시대를 대비할 무기도 제약바이오산업 외에 달리 없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기준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코로나19 관련 백신·치료제 임상 건수는 후보물질 발굴 등을 포함해 720여 건에 달한다. 미국이 가장 많은 312건을 기록했고, 중국 70건, 캐나다 50건, 영국 37건 등을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 18건보다 많은 21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백신·치료제가 없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는 다른 양상이다. 기존 감염병은 상업성이 불분명하거나 환자 모집 등 임상 자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백신·치료제 연구가 더딘 경향을 보였다.

반면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앞다퉈가며 개발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사스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가 첫 번째 백신 임상에 들어가기까지 약 20개월 걸렸으나, 이번에는 약 2~3개월 만에 임상에 돌입하는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의 위협과 우려가 예사롭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연말까지 민관합동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초고속 개발팀’(Operation Warp Speed)을 가동하고 195억 달러를 쏟아 붓기로 했다. 전례 없는 지원으로 연말이나 내년 1월까지 3억개의 백신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3억 달러), 존슨앤존슨(4억 5600만 달러), 모더나(4억 8300만 달러), 사노피(3000만 달러) 등에 지원이 이뤄졌다. 빌게이츠가 설립한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은 미국 노바백스에 3억 8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같이 세계 각국에서 민·관이 감염병 관련 R&D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것은 백신·치료제 개발이 코로나19 종식을 앞당기고, 경제와 일상을 예전으로 돌려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독일 큐어백에 백신 독점 접종권을 10억 달러에 확보하려했던 사건이나, 프랑스 사노피가 코로나19 백신을 R&D 투자국인 미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언급했다가 빈축을 샀던 사건 등도 백신·치료제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현재의 위기를 전시로 상정하며 민간 물자에 개입하는 국방물자생산법(DPA) 발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국 내 백신·치료제 확보를 통한 보건안보의 확립을 최우선과제로 두면서, 각국이 점차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코로나19를 비롯해 향후 빈번해질 유사 감염병 우려 속에서 국가들은 자국 내 필수·원료의약품 비축과 백신·치료제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국내에서 원료의약품을 주로 수입하는 중국, 인도 등 국가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자국 내 의약품 비축을 위해 장벽을 높이고 있는 상황도 원료수급에 적신호로 다가온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높은 수준의 생산시설을 통해 국내 유통하는 약 80% 수준의 완제의약품을 자체 생산할 수 있지만,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18년 기준 26.4%에 그치기 때문이다.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가 줄어들어 의약품 매출은 물론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진행도 수월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료의약품 유통비용 상승까지 숙제로 떠안은 상태다. 주요 수입국의 원료공장 폐쇄와 수출제한 조치 등에 따라 원재료비가 25% 상승할 경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약 1조700억 원의 비용 증가를 부담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임상시험이 지연되는 만큼 R&D 과제를 아예 포기하거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 경우 제약바이오산업의 손실은 수천억에 달할 전망이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그간 역량을 총동원해 코로나19 관련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팬데믹 당시 녹십자(현재 GC녹십자)는 세계에서 8번째로 백신 개발에 성공, 이를 국내에 우선 공급하면서 감염병 종식을 앞당겼다. 이번에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백신·치료제 개발을 성공하면 국내에 무상 공급하거나 우선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산업이 이 같은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규제완화가 절실하다. 기업이 필수의약품·원료의약품 등을 생산하고, R&D 투자를 이어가기 위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3일 정부는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해 올해 안에 코로나19 관련 국산 치료제를 확보하고, 내년에 백신 확보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감염병 극복에 초점을 두고 지원 의지를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이 코로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일회성 미봉책에 그친다면 우리나라가 방역 우수 국가에서 백신·치료제 개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 것이다. 코로나19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대비책으로서의 ‘글로벌 제약강국’을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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