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허가제 보완·지적 재산권 보호 등 ‘민관협력’ 중요

[창간 54주년 기획 1] 치료제 예방 백신 개발이 살길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전무이사

인류 역사에 1억 명이 사망하는 전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 사람과의 전쟁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엄청난 재앙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사람과의 전쟁과 질병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사람과의 전쟁은 휴전이 있지만 질병과의 전쟁은 휴전이 없다. 사람과의 전쟁보다 질병과의 전쟁이 더 위협적이다. 공통점은 무엇인가? 무기체제의 개발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질병은 크게 감염성 질환과 비감염성 질환으로 나눌 수 있다. 감염으로 유발되는 질병은 인류의 노령화와 함께 21세기 인류의 보건과 복지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감염성 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과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와 병원체가 증식하고 생활하는 장소인 병원소가 있어서 이 병원소를 탈출한 병원체가 동물이나 사람에게 전파 침입해 질환을 일으킨다.

돌연변이에 능한 천의 얼굴을 가진 바이러스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하다. 영하 수십 도에서 미래의 번식을 기약하며 긴 잠을 잔다. 냉동 보관한 천연두 바이러스는 30년 뒤 해동되면서 쉽게 살아났고, 1918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70년간 알래스카의 동토에 묻혔던 사체의 폐 조직에 붙어 생존해 왔다. 사스 바이러스는 기댈 숙주 없이 공기 중에서도 1~2 시간은 거뜬하게 살 수 있다.

바이러스는 인체의 방어면역 시스템을 교묘하게 피해서 매우 높은 확률로 지속적인 감염을 확립하고 유지할 수 있기에 아직도 전례가 없는 이러한 생명현상에 대한 작용기전을 구명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숙제로 남아 있다.

수십 년 전부터 감염 병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킨 페스트 재앙이 21세기에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무엇보다도 최근에는 수십 종의 신종바이러스가 연속적으로 출몰하면서 사람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과 바이러스와의 오랜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적인 인구이동 증가와 기후변화, 노령화 등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신종 바이러스성 감염 병의 증가로 인한 팬데믹(Pandemic) 발생 빈도는 점점 더 심화 되어 갈 것이다.

인류문명과 의약품 발전의 역사는 항상 같이 해왔다. 질병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약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인플루엔자로 인한 건강보험재정 손실만 살펴보더라도 매년 수천억원을 넘어서는 등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의 패배는 곧바로 막대한 국가 경제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COVID-19의 사례를 보더라도 인류보건과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신종 바이러스성 감염 병의 뚜렷한 치료제나 예방 백신은 거의 없다. COVID-19도 대증요법 실시와 기존 치료약물의 용도 변경, 스테로이드제 투여, 2차 감염을 막기 위한 광범위 항균제 투약 등이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 안 나오고 있다.

감염병 시대, 전 세계적으로 치료제와 예방 백신 시장은 연간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기술개발로 시장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고 연구개발의 실패위험성과 수요예측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기업 투자는 활발하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신종 감염병과 변종 감염 병의 대응기술은 2018년도 우리나라 기술 수준 평가 기준으로 미국과 EU와 견주어 볼 때 70% 수준으로서 약 5년간의 기술격차가 있다. 장기적인 기술투자가 필요하다. 중장기적 안목으로 연구개발 토양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편, WHO의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 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선언의 의미는 다른 국가에 공중보건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국제적인 대응과 공조 또한 필수적이다.

감염 병 대응연구의 기술격차, 시장실패 위험성, 공공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정부 지원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감염 병 치료제의 신속허가승인제도 보완과 더불어 예방 백신 관련 지적 재산권 등 주요 연구 결과물의 합리적인 민관 공유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인류의 생존권 차원에서 감염 병 치료제와 예방 백신의 개발은 불문가지다. 우리나라는 1986년부터 축적해온 신약(치료/예방) 개발의 경험을 통해서 국내외적으로 처한 힘든 보건경제 환경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감염 병 시대, 치료제와 예방 백신 개발이 살길이다.


보건신문의 전체기사 보기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