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흑사병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허정 교수의 보건학 60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전 보건대학원장)

중세 유럽의 흑사병은 질병사를 공부했던 사람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얘기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줄었고, 농노제도가 없어지고 소작인제도가 도입되는 계기가 됐으며 이는 곧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런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화를 이끈 단초가 바로 흑사병이었다.

그런데 근래 중국에서 흑사병이 발생해 보건당국의 경각심을 울리고 있다고 한다. 흑사병은 생태계 조건이 맞지 않으면 퍼져나갈 수 없다. 유럽 1차 흑사병 유행은 징기스칸의 몽고군이 끌고 간 사람들에 의해 집안에서 자랐던 집쥐들과 함께 들쥐가 늘어나면서 시작됐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 베트남에는 지금도 흑사병 환자가 발생한다. 베트남 시골에서는 아직도 쥐고기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팔고 있다. 흑사병은 한센병과 같이 초기에는 전염력이 많지 않다. 설취류의 진드기를 통해 사람에게 옮겨지지만 특별한 계기를 맞아 흑사병 균이 환자인 사람으로부터 일반 사람에게로 직접 옮겨져야만 전염력도 강해지고 심각한 보건문제가 된다.

질병사를 공부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흑사병에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티베트와 광서성 그리고 운남성의 소수민족을 통해 중국에서는 여러 번 흑사병이 돌았으며, 이는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작고하신 서울대학교 내과 전종희 교수의 회고담에 따르면 20세기 초에도 만주와 몽고에 흑사병이 돌아 한국의사들과 의과대학생들이 동원돼 방역사업에 참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동네에 흑사병이 나돌면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 시키고 가축이나 사람들까지 불태워 없앴다는 얘기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역사적으로 흑사병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흑사병 비슷한 역질이 있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다행한 얘기다. 이번에 알려진 흑사병도 우리나라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들쥐가 갑자기 늘어난다거나 쥐고기를 먹고, 또 쥐가죽을 이용하는 경향이 늘어나지 않으면 흑사병은 전파되지 않는다.

근래 많은 사람들이 인도차이나반도를 찾고 있다. 그 곳 시장에서는 쥐고기를 팔기도 하고 여행객들이 호기심으로 쥐고기를 사 먹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들과 함께 쥐를 잡거나 잡아놓은 쥐를 함부로 만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흑사병이 없지만, 세계는 이제 하나의 지구촌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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