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알려 준 ‘생명의 그물망’

[보건포럼] 서정선 서울대학교 분당병원 석좌 연구교수

보건신문 2020.07.16 09:45:44

몇해 전에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아서 밀러(Arther Miller)의 다큐멘타리 필름을  본 적이 있다. A.밀러는 40여년전 필자가 의예과시절에 재미있게 보았던 ‘세일즈맨의 죽음’의 저자이다. 그는 50-6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파헤친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였었다. 그는 말년에 미북동부 메인주 별장에서 담담히 인생을 반추하면서 지냈는데 영상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터뷰는 별장에서 진행됐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를 오버랩시키면서 그의 말은 신중하면서도 재치가 있어 나도 모르게 쉽게 몰입될 수 있었다. 밀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우리는 모든것과 연결되어 있다. 저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빛등 모든것들은 서로 연결되어있다.” 인터뷰 직후 2005년 2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 다소 의외였다. 자본주의체제에서 경쟁으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의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하던 밀러가 아니었던가. 노작가가 죽기전에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젊었을때 상대했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체제와 이념등의 문제를 뛰어넘어 노년에는 생명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20세기말 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생명의 그물망(web of life)’에서 세계는 이제 ‘부분에서 전체로’의 파라다임의 전환을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성으로 조각조각 얻어진 독특성이 직관에 의해 전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파라다임의 변화는 사고방식과 가치기준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상극의 세계에서 상생의 세계로 바꾸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구에서는 르네상스시대를 시작으로 개별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성을 바탕으로 인본주의가 중세의 암흑을 몰아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구사회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자본주의의 두축인 개인주의와 영리주의는 개인간의 경쟁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결국 승자와 패자를 가른 후에 끝이 난다. 서구의 자본주의는 아직도 상극의 경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의 코로나대유행을 보면 자본주의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뉴욕 8백만 시민의 평균소득은 6만4천불이나 전시민의 10%가 의료보험이 없다. 부와 기술을 무한대로 만들고 싶어하는 현행 서구식 자본주의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밝혀졌듯이 더이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듯이 보인다.

지금 자본주의 시스템은 원시적 생명체인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3만개 염기로 구성된 원시생물체가 30억개의 염기로 된 설계도를 가진 고급 생명체인 인간에게 공개적인 경고메세지를 보낸 것이다. ‘개발을 멈춰라.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인수공통전염병인 코로나는 인간이 야생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인간과의 접촉이 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고있다. 결국 코로나는 판데믹(대유행)을 통해서 인류사회를 상극에서 상생으로 바꾸고 우리가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 줄 것이다.

금강경식 표현을 빌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자신이라는 아상을 없애고 탐진치에서 벗어나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우주와 합일되어 무한한 삶의 의미와 존재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이성중심의 서구사회의 파라다임이 이제 직관중심의 동양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카카오톡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치
맨 위로